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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가 답하다

이벤트 기간: 2024-02-05 ~ 2024-12-30

교보문고 세이노가 답하다 이벤트 PC

나는 독자 개인 메일일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서너 줄 정도의 답변만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공개 질문이기에 내 생각을 많이 늘어놓았다. 12월부터 아주 바빠졌기에 1월 10일 경부터 내게 개인 메일을 보낸 독자들 대부분에게 답을 못 보내고 있다. 빠르면 2월 초순 안에는 답을 보낼 수 있을 듯 싶다.
독자의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8급 여자 공무원입니다.
취업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준비 기간이 길어져서 돈도 마음도 축날까 두려워 얼른 공부를 시작했고 합격했습니다. 일단 공무원에 합격한 이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이직하겠다는 목표였습니다. 단순 업무, 비효율을 싫어하고 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곳은 얼른 벗어나고 싶은 곳이지만 다른 곳으로 가기엔 준비하기 싫고 또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4년 정도 일하다 보니 모든 게 익숙해졌습니다. 비효율에도 살짝 눈감고 넘어가고 ‘이게 더 빠른 길이야.’하고 사실 딱히 문제의식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적당히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과도 대충 잘 지내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남은 시간엔 책과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제 “이직”을 내 꿈에서 지우자’라는 변화였습니다.

요즘 제 1의 목표는 "Don't stress me" 저에게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say yes~!'인거죠.(아닌건 아닌거지만, 이직만큼은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요,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늘 나의 발전 가능성, 적성 등을 영영 묻어두는 건 아닐까 하며 용기 없는 저를 탓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차라리 받아들이고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지우긴 아직도 힘이든가 봅니다. 제가 잘 생각한 건지 여쭤보고 싶으니까요. 저 그냥 이렇게 편하게 살면 안 될까요?

이 책을 처음 펼쳐 들었을 땐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밑줄 치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면서요. 근데 사실 최근엔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다시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지금 삶에서 한 뼘 더 나아지는 책(eN. 퇴직연금 관련)들을 재밌게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 이젠 이 현실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세이노의 답변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잘했다. 나는 사람마다 처지와 가치관이 다 다른데 모두가 나처럼 몰입하면서 살아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자산이 있거나 그런 자산을 물려받을 예정이거나(이때 그 자산의 규모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노력 자체가 안 되는 사람이거나 소박한 생활에서 관조하는 게 더 편하고 행복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책에서 변화가 싫고 현재 상태 그대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도 말했다. 네가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지는 불분명하다. 나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 대신 환희에 사로잡혀 왔지만 너에게는 노력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의 요인이라면 노력하지 말고 편하게 살아도 된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어떤 최고의 공식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을 것이고, 나이가 50대에 이르기 전에 아주 누추하고 작은 곳이라 할지라도 거주할 공간만큼은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신세계의 내면만큼은 너 나름대로 계속 확장시켜야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초에 고정희 시인을 누님이라고 부르며 몇 번 만났을 때, 단칸방 하나 빌려 혼자 살면서 연탄불 갈고 콩나물 다듬고 그러면서 내게 “나는 너처럼은 못 산다”고 하더라. 그녀는 번역 원고지를 시간만 나면 한 장이라도 더 메꾸려던 나하고는 전혀 다르게 돈을 더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답변은 “누님이 등산 대신 저처럼 음악을 좋아하여 마음껏 레코드판 사고 싶고 좋은 오디오 갖고 싶어 하면 좀 달라지실 것 같은데요?”였다. 결국 노력의 방향은 네가 네 삶에서 진정으로 좋아하는 부분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닐까?
사족: 지리산 등반에서 실족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시들 중 하나이다(이 시를 요즘 세대가 과연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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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안녕하세요 선생님.
작년에 처음 글을 접하게 되고 한 장 한 장 아껴보고 있는 독자입니다.
독자의 마음으로는 이 정도 두께의 책이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나오고, 또 전자책도 무료로 풀어주심에 너무 감사했는데요!
일부 곱지 않은 시선 속에는 너무 싼 가격에 출간되어서 시장 질서를 파괴했다고도 하더라고요.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세이노의 답변

내가 데이원 출판사 차보현 대표와 출간에 대해 본격적으로 상의를 하였을 때의 얘기다. 이미 2년전쯤 판매가격은 정해놓은 상황이었다. 차 대표는 도서관들에 정식으로 책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고 초판은 3천 부 정도 찍는다고 하였다. 내가 한 얘기는 표지를 화려하게 뭔가 있어 보이게 하지 말 것, 금박 띠이건 뭐건 그 어떤 띠지를 두르는 짓도 하지 말 것, 어떠한 형태의 광고도 하지 말고 돈을 지불하여야 하는 그 어떤 마케팅도 하지 말 것(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일단 예약판매부터 시도하라고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출판사 직원들이 격렬히 저가 출판을 반대하였기에 책이 안 팔리면 재고를 차 대표가 전부 사겠다고 했다는데 나도 재고가 남으면 내가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초기 걱정과는 달리 오늘부로 이미 90만 부에 도달했다는 것에 오히려 나는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e북이나 PDF 파일은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차 대표가 무료로 풀겠다고 하였기에 내 출판 의도를 정확히 알고 사심을 버린 것이 고마웠다(취준생들을 상대로 유튜브하면서 그들의 긴박한 심정을 이용해 pdf 자료를 비싸게 팔아먹는 데 혈안이 된 연놈들도 많다며? 거기에 돈 갖다 바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도서 시장은 작가·출판사·독자·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 책의 가격에 대해 가장 싫어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스스로 부자라고 하면서 책으로 유명세를 얻어 돈을 벌려는 자들 아닐까? (내 책을 읽고 어딘선가 들어본 것 같은 뻔한 얘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지 않던가? 20여 년 전부터 쓰인 내 글을 읽었던 자들이 자기 브랜딩을 위해 자기 생각인 양 풀어서 쓴 글과 책이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선한 영향력’을 들먹이는 연놈들도 있는데, 속으로는 자기가 취할 이익을 계산하면서도 ‘선한’이라는 말을 쓴다면 예수가 말한 회칠한 무덤들이다. 부자로 자칭하는 개인이 쓴 자기계발서 시장은 가격 면에서 파괴되어야 한다. 노력의 대가는 받아야 한다며 고액 인세를 받으려는 사람은 부자가 전혀 아니며, 책이나 강의에 열심인 사람들 또한 알려진 것만큼의 부자가 전혀 아니라 자산은 많아도 부채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사람들 아닐까? 그런 자들이 내 책 가격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라도 타격을 받았다면 내가 원했던 결과이지만… 글쎄다.

도서 시장의 질서가 파괴되었다고 생각한 곳은 일부 출판사나 작은 서점 혹은 출판기획자일 것이다. 책값이 웬만큼 이상은 되어야 나눠 먹을 파이의 크기가 유지되는데 그게 깨졌기 때문이다. 특히 출판기획자들은 책이 안 팔려도 자기 몫은 미리 챙겨왔는데 위기를 느낄 수도 있었을 듯싶다. 어쨌든, 그래서 자기계발 서적 출판사들이 타격을 받았을까? 내 책 가격이 다른 자기계발서들의 구입을 방해하면서 시장을 교란시켰을까?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2권 이상을 동시에 주문한 경우 그 1권이 내 책이었다면 다른 책은 무엇일까가 궁금하여 1월 초 교보문고에 데이원 출판사를 통해 물었는데 70~80%는 여러가지 형태의 자기계발서들이고 나머지는 소설이나 인문서였다. 즉 자기계발서를 사려는데 내 책이 싸니까 함께 주문했거나 아니면 내 책을 사려는데 배송비 절약하려고 다른 자기계발서를 함께 주문하였거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에 자기계발서로의 쏠림이 일어났을 뿐이다.

서점은 어떨까? 작은 서점에서는 정가가 너무 낮아서 팔아도 돈 몇 푼 남지도 않는 가격으로 왜 책을 출간했느냐는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형서점의 직원 혹은 중소서점 주인에게 물어보아라. 내 책으로 인해 손님의 방문이 늘어났고 사는 김에 다른 책 하나를 더 집어 드는 경우가 많았음을 나는 안다. 내가 출판사 및 그 관계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시장 질서 파괴를 말하기 전에 쇄 갖고 장난치는 것부터 멈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쇄는 서른 번 인쇄하여 찍어냈음을 의미한다. 재고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한 번에 3천 부 미만을 찍는 경우도 흔한데 이를테면 1천 부를 찍고 난 후 시간이 지나 다 팔려서 다시 1천 부를 찍으면 2쇄가 된다. 심지어 어떤 출판사는 많이 팔린 책처럼 보이고자 한 번 인쇄할 때 판권면 필름과 종이만 갈아 끼워 가면서 버젓이 여러 쇄를 찍은 것처럼 나눠서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짓을 하는 곳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때문에 쇄가 많다는 것은 천천히 팔렸다는 의미일 수는 있어도 엄청나게 많은 책 판매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책이 얼마나 읽히는지가 아니라 인쇄소 기계가 몇 번 돌아갔는지를 세고 과장되게 떠드는 것 자체부터가 떠돌이 장사치나 하는 야바위와 다름없음을 출판계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웃기는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독자를 미혹시키고자 몇 쇄라는 것을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이 유일할 것이며 나는 이런 작태를 진실한 마케팅 수법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일본도 ‘연일 증쇄 중!’ 이 정도 문구는 쓰지만 한국처럼 몇 쇄! 몇 쇄 돌파! 몇 쇄 기념! 이렇게는 광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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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안녕하세요~ 전 6ㅇ대 시골 아줌마입니다. 전 학력이라고 할수 없는 국민학교를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배운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 대인관계에서의 위축, 낮은 자신감으로 힘들게 살고 있었을때 전 세이노님 책에 학벌에 대해서 실려있어 책을 구입하여 학력이 낮은 사람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 가면,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궁금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학력은 고졸은 나와야 무엇을 해도 되는 사회이구나 싶어 나처럼 학력이 낮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로 책을 덮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읽기로 했으니 끝까지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733쪽이나 되는 벽돌책을 다 읽고 돈을 벌 수 있는 건 학력이나 학벌이 아니라 지치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구나로 생각 전환하여 다른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학력이 낮아도 지금이라도 지치지 않고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세이노 님의 진솔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세이노의 답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시골이라면 무엇인가 심어 놓고 가꿀 수 있는 땅이 있지 않을까? 된장 고추장도 담그고 5일장에 가서라도 팔아보면 어떨까? 아주 작은 비닐하우스도 만들고 뭔가 길러보아라. 농협 같은 곳에 가서 농사를 지을 때 어떤 지원을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지도 알아보아라. 시골에 살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혹시라도 질병이 있다면 육체가 허락하는 아주아주 작은 일이라도 찾아보아라. 내가 천상병 시인을 내 책에서 언급하였을 때 언급하지 않은 말이 있다. 천상병 시인이 고문후유증으로 몸이 정상이 아니었음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거의 매일 술에만 계속 매달려 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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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저에게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에 올라가는 남자아이 2명이 있는데요. 부모로서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최근 AI, 로보틱스 등의 급격한 기술 발전을 지켜보면 제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될 약 20년 후에는 인간의 노동력으로는 무언가 결실을 맺기는 어려운 세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현재 정규 교육과정은 (현재 사회 기준에) 필요한 지식과 스킬을 가르치는데 집중되어 있어서 기술이 고도화된 20년 후의 미래를 대비하기엔 역부족일 것 같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과 같은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가 지속된다면 향후 한국의 내수 산업은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설 것 같고 젊은이들은 높은 세금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 같은데요.

이러한 환경을 대비하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대비 시키면 좋을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아이들에게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추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덧붙여서 2017년, 제 나이 36살에 선생님 인쇄본을 처음 접한 뒤에 제 인생의 진로가 크게 변화되어 현재는 17년도와 비교할 수 없는 연봉과 자산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 책 인쇄본 10권씩 구비해두고, 똘망 똘망한 사회생활 초년생들에게 책을 선물하곤 했었는데요. 금번에 정식 출간된 책에는 (과거 인쇄본에는 없는) 최신 내용이 담겨있어서 과거 인쇄본은 여전히 제 책장에 고이 모시고 있습니다. ^^;;

세이노의 답변

구글이 2006년 유튜브를 인수하였을 때는 ‘인수할 만하지 뭐’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2014년 구글이 보일러 온도조절기 회사였던 네스트를 엄청난 거금을 주고 인수했을 때는 ‘얘들이 미쳤나’ 생각했다. 아무리 애플 출신이 많은 회사라고 해도, 온도조절기를 휴대폰으로 조정 가능하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현재 네스트의 주요 제품은 “와이파이로 연결되는 센서 기반의 자가학습 및 프로그램 입력이 가능한 온도조절기, 연기 및 일산화탄소 감지기, 스마트 스피커, 라우터”로 나온다. 온도조절기는 손으로 버튼을 눌러서 손쉽게 할 수 있고,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서 설정 온도를 바꿀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와이파이로 연결해 학습까지 시켜가며 프로그램을 입력한다고 해서 과연 에너지 비용이 얼마나 절감될까 의심된다. 연기감지기? 소방용 연기감지기 센서는 한국에서도 6천 원 정도면 얼마든지 구매 가능하고 그것을 휴대폰에 연동시키는 것도 절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스마트 스피커도 그렇고 라우터 역시 대단한 상품이 전혀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휴대폰을 이용하는 새로운 기술이라든가 인공지능이라는 게 종종 너무 과대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다(이 글을 쓰는 중에 구글에서 스마트 스피커 사업을 접으려고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챗 gpt 역시 사용하여 보니 머리에 든 건 없는데 아는 척하려는, 알려고 하지만 실제 노력은 하지 않는 게으른, 세부적인 것은 침묵하고 그저 둥글게 둥글게 말하여도 뭔가 똑똑해 보이는 줄로 아는, 닭대가리 블로거들이나 사용할 수준으로 보였다.
자율주행차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거 내 생애에는 안 나올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자율주행 기능은 결국 각종 센서가 보내는 신호들과 이미지를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데 인간 말종들의 행동은 그 모든 데이터를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륙횡단 트럭들을 자율주행으로 만들고 맨 앞 트럭은 사람이 운전하고 그 뒤의 트럭들은 그를 쫓아가는 방식은 기차와 경쟁하는 것이기에 경제적으로도 가능한 얘기겠지만(트럭 운전자의 운전 시간이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으나 땅덩어리가 큰 호주 같은 나라에서 유용할 듯) 100% 자율주행 차량이 과연 가능할까 여전히 나는 의심한다.
AI가 미칠 영향: 번역을 하였을 때 몇 개월간 번역가들을 고용하여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실력이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높지만 아주 탁월한 수준에는 못 미치는 번역가들의 원고는 어디서 틀렸는지를 확인하여야 하기에 결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여야 했다. AI는 그 중상위권 번역가들과 비슷하다. 누군가는 AI가 제시한 것을 검토하여 오류가 없는지를 검토하여야 한다(요즘 해외 대형출판사들이 국내 출판사와 판권계약을 할 때 AI 번역 금지 조항을 넣는 이유는 AI에게 책 내용이 입력학습되는 위험뿐만 아니라 오역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고객이 제시하는 문제 역시 AI가 응대를 한다고 하여도 AI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기 마련이므로 누군가는 계속 체크하여야 한다. 결국 AI 시대는 최상위권이 아닌 사람들을 하류로 내려보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전체를 파악하는 최상위권 사람들은 더더욱 높은 위치로 올려가게 될 것이다. 즉 사무공간에서 정형화된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공무원을 포함한 중산층의 일자리들은 점차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며 이러한 대체는 인구 감소에 따라 증가될 것이다. 다만 그 대체 속도가 실제로 어느 정도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AI가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일자리는 몸을 움직여 작업을 실행하여야 하는 블루칼라 분야이다. 자동차 정비를 예로 든다면 바디 수리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이 직접 해야 할 분야로 예상된다. [내가 애들을 다시 키운다면 가장 먼저 이과적 호기심을 많이 갖도록 교육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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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스승님의 글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을 찾은 사람이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부와 관련해서 스승님의 기부사업에 동참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캠페인을 만들어서 운용하시는것은 어떨까요? 제가 확인한 바로는 모금액의 94%가 실제 기부로 쓰이는 단체이고 스승님 한사람의 힘으로 고액을 하시는것 보다, 스승님의 캠페인을 통해 소액의 다수 후원자가 생긴다면 기부문화 확산에도 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세이노의 답변

나는 감사패를 여러 곳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받았는데 한 번 휙 쳐다보고는 다시 상자 속에 처박아 놓은 후 버리기도 했고 이곳저곳에 그냥 쌓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에 담뱃갑보다 약간 큰 나무 감사패를 받았을 때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회상에 잠시 빠져들었다. 어느 기부단체에서 내가 기부한 지 35주년이 되었다고 보낸 것이었다. 33살에 매달 1만 원을 자동 납부하기 시작한 것이 첫걸음이었는데 한 해도 거르지 않았고 지금은 액수가 좀 된다.
33살 때는 빚이 여전히 있었지만 조금씩 수입이 쌓여가던 시기였다. 나는 기부를 하려면 먼저 가족부터 챙기고 직원이 있으면 그 직원부터 챙기라고 권유한다. 그 수준을 넘어가면 그때 가서 비로소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 순서상 맞다. 삼영산업이 경영악화로 인한 누적부채 160억 원 때문에 직원 전원에게 해고 통지를 하였다는 보도를 보았다. 지난해 작고한 창업주는 1조 기부왕으로 유명하였다. 순서가 잘못된 기부로 보인다.

한국에서 기부금은 기부금 전액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특례기부금(예전의 법정기부금)과, 기부금 일부에 대해(상황에 따라서는 전액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일반기부금(예전의 지정기부금)으로 나뉜다(정치자금 기부금은 논외로 한다). 세액공제의 의미는 기부액이 1억인 경우 기부를 하지 않으면 부과될 세금을 완전 혹은 일부를 면제하여 준다는 뜻이지 세금납부 금액에서 1억을 깎아준다는 뜻이 아니다. 기부금에 대한 법은 기본적으로 소득세법이 법인세법을 추종하므로 법인세법 제24조를 먼저 보고 소득세법 제34조를 보면 된다. 법적으로 특례기부금을 모을 수 있는 기부단체는 받을 수 있는 기부단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와 바보의 나눔, 2개뿐이다. 그 외의 모든 기부단체들은 일반기부금을 받는 곳들이다.

기부단체들은 “매년 국세청에 재무 현황을 공시하고 행정안전부에 보고하는 법적 의무를 지키며, 매년 외부 감사 진행 후 감사보고서도 공개”하면 장땡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책에서 아름다운재단에 대해 공개적으로 신뢰를 버렸다고 썼고 그 입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름다운재단 초기에는 사무용품 구입 내역까지도 자세히 나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두리뭉실해졌고 그 두리뭉실이 정치색이 비슷한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22년도 사업보고서에서도 사회참여 부분을 보면 개인지원과 단체지원이 동시에 발생한 경우 그 비용 분배는 나오지도 않았고, 다른 사업부분에서 나오는 단체들과의 중복 여부 확인도 없고 단체 이름은 한 군데도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재단은 다른 시민단체들과 나눠 먹기 비슷한 행위를 하는 곳이라는 의혹을 갖고 있다.

종교단체에서 사용하는 수법: 선교용 차량을 구매한다고 하고 여러 명에게 돈을 받는다. 차량 구매 영수증을 기부자 개인에게 따로따로 보여주면서 고맙다고 한다. 기부한 사람들은 자기가 준 기부금으로 차를 구매하였구나 생각하지만 사실은 찻값의 몇 배 금액을 기부받은 것이고 구매대금 이외의 금액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모든 기부자 명단과 기부금액, 사용처가 아주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믿기 어렵다.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수법: 의대나 법대 같은 곳에는 이미 부잣집 애들이 많이 다닌다. 기부금을 줄 때 성적 위주로 장학금을 주지 말고 정부에서 정한 차상위계층 이하인 경우에만 주도록 요구해야 한다. 학생의 통장에 장학금을 입금시킨 뒤 다시 되돌려받아 교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 경우 이력서에 장학금을 받았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어쨌든 기부문화가 확산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의하여 구체적으로 고민하여 보겠다.
그에 앞서 실험적으로 아래 제안을 던져본다. 부자들이 얼마나 이 글을 볼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건축 전반에 대해 수십 년 경험자이며 그 어떤 자격증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구조, 설계, 전기, 급수배수, 소방전기, 소방기계, 통신, 냉난방, 환기, 주차, 물탱크, 정화조, 집수정, 실내마감 등등에 대해 전체를 구석구석 아는 빠꼼이다. 건설사가 일하는 모습이 하도 답답하여 껍데기 건설사를 인수 후 10년 이상 경영한 적도 있는데 순전히 내 공사만을 수행하였다. 내가 자신하는 것은 서울 근교 이내에 대지가 있고, 인입전기 900Kw 미만이며 분양이 목적이 아니라 임대 목적인 상가건물의 건축주가 내 도움을 받을 경우 상당한 비용을 절약할 뿐 아니라 유지보수관리에 있어서도 유리한 건물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건축을 도와주는 대신 건축주는 기부를 하는 건 어떨까. 조건은 최하 억 단위의 금액을 공동모금회에 실제로 기부하는 것이고 나 개인은 1원도 이익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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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6
최근 몇몇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유명해진 뒤 전자책 또는 강의를 파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이노님께서 쓰신 글에서 책읽기의 중요성은 많이 강조되었으나 글쓰기의 중요성은 강조하신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메일 하나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심)

지속적인 글쓰기가 부자가 되는 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7
선생님의 인생 책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세이노의 답변

답이 좀 길어질 듯하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아프리카, 남미, 북유럽 등을 여러 번 혼자 다녀오면서 나는 내 사진은 물론 풍경 사진조차 한 번 안 찍었다. 거래처 사진만 찍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어떤 소설의 영향을 어릴 때 너무나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전혀 아니었다. 60명 중 절반 아래에서 맴돌았으니까. 그래도 소설은 계속 꾸준히 읽었다. 고1 때였나? 1968년판 현대세계문학전집(신구문화사)을 친구집에서 한 권씩 빌려서 읽었을 때 제1권에는 존 파울즈의 ‘콜렉터’와 뮤리엘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가 있었다. 그것들을 흥미진진하게 읽고 나서 콜렉터에 대한 4페이지 정도의 해설(그 소설의 번역자이자 영문학자였던 정종화 교수가 쓴 것이었다)을 한자가 많아 낑낑대며 읽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그저 나비 채집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던 한 남자가 졸지에 부자가 된 후, 평소에 사모하던 미란다를 납치하여 지하실에 가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이어가다가 그녀가 죽자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서는 얘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창조와 복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이 숨겨져 있는 소설이었던 것이다(이 소설을 영화나 연극으로 보면 절대 안 된다). 그림을 그리는 미대생인 미란다는 남자가 나비를 죽여 채집하거나 사진을 찍어 복제하는 행위를 경멸하는데 나는 그 영향을 받아 사진기를 멀리하고 창조적 행위를 열망하면서 그녀가 좋아하였던 G.P. 같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내 삶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어쨌든 어떤 소설을 읽은 뒤 비평 내지는 해설을 찾아 읽어보는 습관이 그때 생겨났다. 책을 읽기 전에 비평이나 해설을 먼저 읽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읽은 후 내 생각과 비교하는 게 때로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도 되고 재미있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내 생각과 크게 다른 경우가 적어지면서 그만두었다.

군대에서 도서관 관장을 할 때는 매일 저녁 이후 적어도 1, 2권의 책을 읽었는데 90%는 인문서적, 시집, 소설이었다. 도서관은 미군들이 사용하던 콘셋막사 안에 내가 만든 것이고 점호시간 이후에는 창문을 담요로 덮어 불빛이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책을 읽다가 야전 침대에서 잤다. 읽기 어려운 문장은 국어사전을 뒤져가며 이해가 될 때까지 읽은 덕분에 내 문해력이 갑자기 늘었고 그다음에는 공부머리가 생겼음을 느낄 정도로 문장 이해가 빠르게 되었다.

소설을 많이 읽었기에 매년 12월에 신춘문예 공고가 신문에 뜨면 가슴이 두근대곤 했었다. 그러다 1977년 12월에 이번에는 하나 써보자 하는 생각에 뒤늦게 1주일을 매달려 단편소설을 쓴 뒤 한국일보에 친구 이름을 필명으로 하여 ‘어느 하루’라는 단편소설을 마감시간이 다 된 시간에 직접 방문 제출하였는데 1978년 1월6일 보도를 보니 본선에 올라간 작품 5개 중의 하나로는 선택되었다. 그래서 신이 나서 1979년 동아일보 중편모집에 두 달 정도 원고를 써서 응모하였지만 본선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그때 당선작이 이문열의 ‘새하곡’이었고 읽어보니 나는 쨉도 안 되었다. 그리고 그해 발표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었을 때 나는 소설가의 꿈을 깔끔하게 완전히 던져 버렸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간단히 메모를 한 뒤에는 다 읽은 책 갈피에 끼워 넣었다. 책 자체에 메모를 써 놓기도 했고 어느 책이건 밑줄을 그었으며, 독후감은 전혀 쓰지 않았다. 소설을 쓰고자 했을 때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몇 권 보았다. 내 기억에 나를 제일 많이 일깨워 준 책은 서두에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를 제시하면서 그 광경을 머릿속에 투영시킨 후 “달 밝은 밤”, “수루”…. 등등에 대해 하나씩 상상하여 글로 표현하여 보라는 내용이 서두에 나오는 책이었다(책을 오래전에 분실하였기에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파고들었던 최인훈인데 검색하여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글쓰기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두뇌에 뭐가 이미 들어가 있는지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본다. 때문에 우선은 글쓰기보다는 소설이나 시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인문서적들을 어려운 문장 하나도 놓치지 말고 분명히 이해하면서 읽어나가야 두뇌가 훈련되면서 채워지게 된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특히, 읽기 지루한 책들을 포기하면 안 된다. 그게 문해력 허들이니까. 한편, 유튜브 영상으로 전달받는 지식의 양은 그 시간에 글로 쓰여진 것을 읽음으로써 얻는 지식의 양의 10% 수준인데 왜들 그렇게 유튜브를 볼까? 문해력이 바닥이기에 머리로 읽는 것은 잘 안 되고 귀로 듣는 게 편해서가 아닐까? 정신들 좀 차려라. 결론: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이해하며 나가는 읽기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소설은 독서 후에 비평, 해설, 심사평 등을 읽어보고 자기가 어떻게 읽었는지를 비교하여 보는 것을 권유한다. (사족: 소설 속 주인공 중에서 커피라도 한잔 같이 마시자고 하고 싶은 인물이 딱 한 명 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서 나오는 진희였다. 나는 이 소설이 나온 지 10년 정도 지난 후에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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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살아가면서 얻은 귀한 경험을 거의 원가에나 다름 없는 가격으로 사람들에세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세이노의 가르침'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두고, ""자신만의 기준과 성취를 위한 성찰보다는 '무조건 부자 되기'가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된 우리 시대의 씁쓸한 풍경""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면 단순히 돈 많이 버는 게 장땡이라는 내용은 절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세간의 평가에 대해 저자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세이노의 답변

주로 먹물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 700쪽이 넘는 내 책을 다 읽으려면 시간이 엄청 소요되는데 과연 읽었을까? 내가 확신을 하는 것은 내 책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10명 중 9명은 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자가 절대 아니며 뉴스나 잡지 원고를 작성하고자 읽어본 척하는 자들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니 뭔가 비평은 하여야 할 것 같고 지식인임을 보여주는 쌈박한 글을 쓰고도 싶은데 시간은 없으니 그저 돈과 관련된 내용만 훑어보거나 그것마저도 제대로 읽은 자가 절대 아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책이 베스트셀러라니까 수많은 곳에서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는데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기자들 포함) 거의 모두는 내 책에 대해 대충 알아보고 나를 뉴스거리 중의 하나로 생각하여 보낼 뿐이지 책을 다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메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출연 여부를 논의할 때, 나의 조건 중 하나는 PD와 진행자가 “내 책을 반드시 다 읽었을 것”이었다.
‘무조건 부자가 되는 것만이 최고의 삶’이라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 없었고 지금도 없다. 내 글의 전제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이고 상당 부분은 그 전제와는 무관하게 life와 living을 후회 없이 영위하는 방법을 위한 것이다. 즉 all or nothing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부자되기’가 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면 너의 독해력을 의심하거나 주저 없이 책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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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징에서 돈 받는 것 이상으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돈을 안주는데 더 많이 일하면서 근면하고 성실한 한국인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걸 이뤘는데 요즘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우리는 돈을 조금주는 대신 너희는 경험을 쌓았다는 열정페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기업은 이런걸 이용해서 갑질하고, 누군가는 대우를 덜해줘도 버티고 너말고도 일할 사람이 많다며 이런 갑질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하기도하는데 저자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세이노의 답변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대가가 빨리 주어지기를 바라지는 말라’는 내 말을 어떤 사람들은 ‘자본가들이 직원들을 더 많이 피 빨아먹으려고 하는 수작’으로 해석할 것이다. 그들은 세이노가 말하는 세상의 기준이라는 것이 사실은 자본가나 사장이 바라는 기준이라고도 말할 것이다. 그들은 ‘세이노의 말 믿으면 똥 된다’고 외치고 다닐지도 모른다. 내가 책에서 기회비용과 대체비용을 언급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역량을 키워놓았는데 회사에서 대우를 소홀히 한다면, 그리고 그 기간이 1년 이상 지속된다면, 너를 대우해 줄 다른 회사를 찾아 나서라. 네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어 있음에도 열정페이나 준다면 네가 사장을 갈아 치워야 하므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제대로 된 사장이라면 네가 사표를 낼 때 너 같은 사람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한 대화 요청이 없다면 너는 너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열정페이는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나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영역에서 발생한다. 열정페이에 대한 가장 좋은 복수는 네가 회사에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게 만들고 나서 다른 회사로 제대로 된 대가를 받고 이직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 회사에서 제발 좀 다시 돌아와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그 복수는 제대로 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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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스승님의 글을 8번 완독 후 발췌독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유년시절의 추억은 언급되어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중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것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세이노의 답변

이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았었지만 답을 여기서 처음 한다. 나의 친모는 내가 생후 6개월경 되었을 때 사망하였고…. 중3때 강원도 인제의 어느 산 중턱에 있던 그 무덤에 혼자서(길을 안내해 준 그 지역 사람과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갔었다. 마지막이라고 한 이유는 그날 소주 한잔을 무덤에 부으면서 “저 여기 다시는 안 오겠습니다”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긴 얘기가 있기는 하지만 ….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생각하면 된다(삶이 혹시라도 흔들린다면 그 시를 읽어보아라. 세이노가 하지 않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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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질문

질문 –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술을 꼭 배워야 할까요?
(‘삶의 조언’ 관련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세이노 님. 저는 20대 초반 대학생입니다. 저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직 마실 줄도 모르는데요.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술을 꼭 배워야 할까요?

저는 술 자체가 맛없기도 하고 냄새도 어지러운 데다가, 취해서 꼴사나운 짓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여러모로 거부감이 들어서 술을 마시지 않아 왔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술은 물론이고, 하물며 가족들, 부모님과도 술 한잔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이 점에 대해서 조금 아쉬워하시는 것 같지만요.)
알바 직원들끼리의 술자리나 대학 Mt, 개강/종강 기념 뒷풀이도 마찬가지고요. 안 그래도 술이 싫은데, 괜히 가서 술을 억지로 마셔야 하거나 안 마시면 분위기 깰까 봐 매번 술자리 자체를 피했습니다. 소위 술 문화라는 것도 무섭고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술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술을 마시면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스트레스가 풀린다, 추억 거리가 된다 등등). 특히 부모님은 회식 자리를 통해 동료 간의 유대감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또 그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도 말씀하시고요.

저 역시 고민 되는 건, 사적인 관계만 있는 지금이야 괜찮겠지만 대학교 졸업을 앞둔 상태로써 앞으로의 직장, 조직 생활을 생각하면 술을 안 마신다는 것이 애로 사항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회생활을 위해서 술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세이노 님의 견해를 여쭙고 싶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이노의 답변

나의 아버지는 정말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환갑잔치 때 누군가 계속 술 한 잔을 끈질기게 권유하자 분노하여 “안 마신다고 했잖아!” 소리 지르며 잔칫상을 뒤엎어버려 파투가 났던 오래된 기억이 내게 남아있다. 왜 아버지가 술을 전혀 안 드셨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일본 유학 후 첫 의사생활을 만주에서 하였는데 어느 날 밤, 혼자 살던 일본인을 술 먹고 수술하다가 실수로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2-3일 후 해방이 되면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기에 북한의 고향으로 도망쳤으며 그때 술을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었다(오해하지 마라. 내가 아버지를 의사로는 100% 존경하지만 아버지로는 나하고의 세대 차이가 너무 벌어져 있어서 였는지 일머리 잡는 교육과 인간 육체의 실상을 일찍 보여준 것 이외에는 별로였다).
억지 술자리는 나도 정말 끔찍하게 싫어했다. 술 먹고 늘어놓는 개소리나 헛소리도 듣기 싫었고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여 듣는 것도 싫었다. 나는 내가 내 정신줄을 계속 통제하기를 원하기에 정말 적당히만 마시거나 안 마시는 것이 원칙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재벌급 중국계 미국인은 술자리에 빠짐없이 참석은 하지만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면서 탄산수만을 마셨다(나이트클럽에서도 그랬다).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서 술은 못 먹지만 여러분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참석했다는 게 그의 발언이었다. 그랬던 그가 좀 친해진 후 일본에서 단둘이서 식사를 하는데 나마죠조(사케의 종류)를 시키더니 자기 술 먹는 거 절대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같이 한잔하자고 하더라. 술 먹고 개판 치는 사람들이 싫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
(나마죠조는 나도 즐겨 마시고 빈 병을 모아 조명을 만들기도 했다).
술을 싫어하는데 억지로 좋아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도 없다.
술자리에서는 술 대신 다른 것을 마시고 남들 말하는 정도만큼은 너도 말을 해야 한다. 그 다음날에는 숙취해소 음료를 네 돈으로라도 사서 돌려라.

비법도 있는데 데이원 출판사 대표를 통해 너에게만 개인적으로 따로 전달될 것이고 절대 공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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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의 답변 01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잘했다. 나는 사람마다 처지와 가치관이 다 다른데 모두가 나처럼 몰입하면서 살아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자산이 있거나 그런 자산을 물려받을 예정이거나(이때 그 자산의 규모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노력 자체가 안 되는 사람이거나 소박한 생활에서 관조하는 게 더 편하고 행복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책에서 변화가 싫고 현재 상태 그대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도 말했다. 네가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지는 불분명하다. 나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 대신 환희에 사로잡혀 왔지만 너에게는 노력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의 요인이라면 노력하지 말고 편하게 살아도 된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어떤 최고의 공식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을 것이고, 나이가 50대에 이르기 전에 아주 누추하고 작은 곳이라 할지라도 거주할 공간만큼은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신세계의 내면만큼은 너 나름대로 계속 확장시켜야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초에 고정희 시인을 누님이라고 부르며 몇 번 만났을 때, 단칸방 하나 빌려 혼자 살면서 연탄불 갈고 콩나물 다듬고 그러면서 내게 “나는 너처럼은 못 산다”고 하더라. 그녀는 번역 원고지를 시간만 나면 한 장이라도 더 메꾸려던 나하고는 전혀 다르게 돈을 더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답변은 “누님이 등산 대신 저처럼 음악을 좋아하여 마음껏 레코드판 사고 싶고 좋은 오디오 갖고 싶어 하면 좀 달라지실 것 같은데요?”였다. 결국 노력의 방향은 네가 네 삶에서 진정으로 좋아하는 부분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닐까?

사족: 지리산 등반에서 실족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시들 중 하나이다(이 시를 요즘 세대가 과연 알까?)

세이노의 답변 02

내가 데이원 출판사 차보현 대표와 출간에 대해 본격적으로 상의를 하였을 때의 얘기다. 이미 2년전쯤 판매가격은 정해놓은 상황이었다. 차 대표는 도서관들에 정식으로 책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고 초판은 3천 부 정도 찍는다고 하였다. 내가 한 얘기는 표지를 화려하게 뭔가 있어 보이게 하지 말 것, 금박 띠이건 뭐건 그 어떤 띠지를 두르는 짓도 하지 말 것, 어떠한 형태의 광고도 하지 말고 돈을 지불하여야 하는 그 어떤 마케팅도 하지 말 것(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일단 예약판매부터 시도하라고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출판사 직원들이 격렬히 저가 출판을 반대하였기에 책이 안 팔리면 재고를 차 대표가 전부 사겠다고 했다는데 나도 재고가 남으면 내가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초기 걱정과는 달리 오늘부로 이미 90만 부에 도달했다는 것에 오히려 나는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e북이나 PDF 파일은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차 대표가 무료로 풀겠다고 하였기에 내 출판 의도를 정확히 알고 사심을 버린 것이 고마웠다
(취준생들을 상대로 유튜브하면서 그들의 긴박한 심정을 이용해 pdf 자료를 비싸게 팔아먹는 데 혈안이 된 연놈들도 많다며? 거기에 돈 갖다 바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도서 시장은 작가·출판사·독자·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 책의 가격에 대해 가장 싫어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스스로 부자라고 하면서 책으로 유명세를 얻어 돈을 벌려는 자들 아닐까? (내 책을 읽고 어딘선가 들어본 것 같은 뻔한 얘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지 않던가? 20여 년 전부터 쓰인 내 글을 읽었던 자들이 자기 브랜딩을 위해 자기 생각인 양 풀어서 쓴 글과 책이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선한 영향력’을 들먹이는 연놈들도 있는데, 속으로는 자기가 취할 이익을 계산하면서도 ‘선한’이라는 말을 쓴다면 예수가 말한 회칠한 무덤들이다. 부자로 자칭하는 개인이 쓴 자기계발서 시장은 가격 면에서 파괴되어야 한다. 노력의 대가는 받아야 한다며 고액 인세를 받으려는 사람은 부자가 전혀 아니며, 책이나 강의에 열심인 사람들 또한 알려진 것만큼의 부자가 전혀 아니라 자산은 많아도 부채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사람들 아닐까? 그런 자들이 내 책 가격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라도 타격을 받았다면 내가 원했던 결과이지만… 글쎄다.

도서 시장의 질서가 파괴되었다고 생각한 곳은 일부 출판사나 작은 서점 혹은 출판기획자일 것이다. 책값이 웬만큼 이상은 되어야 나눠 먹을 파이의 크기가 유지되는데 그게 깨졌기 때문이다. 특히 출판기획자들은 책이 안 팔려도 자기 몫은 미리 챙겨왔는데 위기를 느낄 수도 있었을 듯싶다. 어쨌든, 그래서 자기계발 서적 출판사들이 타격을 받았을까? 내 책 가격이 다른 자기계발서들의 구입을 방해하면서 시장을 교란시켰을까?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2권 이상을 동시에 주문한 경우 그 1권이 내 책이었다면 다른 책은 무엇일까가 궁금하여 1월 초 교보문고에 데이원 출판사를 통해 물었는데 70~80%는 여러가지 형태의 자기계발서들이고 나머지는 소설이나 인문서였다. 즉 자기계발서를 사려는데 내 책이 싸니까 함께 주문했거나 아니면 내 책을 사려는데 배송비 절약하려고 다른 자기계발서를 함께 주문하였거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에 자기계발서로의 쏠림이 일어났을 뿐이다.

서점은 어떨까? 작은 서점에서는 정가가 너무 낮아서 팔아도 돈 몇 푼 남지도 않는 가격으로 왜 책을 출간했느냐는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형서점의 직원 혹은 중소서점 주인에게 물어보아라. 내 책으로 인해 손님의 방문이 늘어났고 사는 김에 다른 책 하나를 더 집어 드는 경우가 많았음을 나는 안다. 내가 출판사 및 그 관계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시장 질서 파괴를 말하기 전에 쇄 갖고 장난치는 것부터 멈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쇄는 서른 번 인쇄하여 찍어냈음을 의미한다. 재고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한 번에 3천 부 미만을 찍는 경우도 흔한데 이를테면 1천 부를 찍고 난 후 시간이 지나 다 팔려서 다시 1천 부를 찍으면 2쇄가 된다. 심지어 어떤 출판사는 많이 팔린 책처럼 보이고자 한 번 인쇄할 때 판권면 필름과 종이만 갈아 끼워 가면서 버젓이 여러 쇄를 찍은 것처럼 나눠서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짓을 하는 곳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때문에 쇄가 많다는 것은 천천히 팔렸다는 의미일 수는 있어도 엄청나게 많은 책 판매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책이 얼마나 읽히는지가 아니라 인쇄소 기계가 몇 번 돌아갔는지를 세고 과장되게 떠드는 것 자체부터가 떠돌이 장사치나 하는 야바위와 다름없음을 출판계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웃기는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독자를 미혹시키고자 몇 쇄라는 것을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이 유일할 것이며 나는 이런 작태를 진실한 마케팅 수법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일본도 ‘연일 증쇄 중!’ 이 정도 문구는 쓰지만 한국처럼 몇 쇄! 몇 쇄 돌파! 몇 쇄 기념! 이렇게는 광고하지 않는다.)

세이노의 답변 03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시골이라면 무엇인가 심어 놓고 가꿀 수 있는 땅이 있지 않을까? 된장 고추장도 담그고 5일장에 가서라도 팔아보면 어떨까? 아주 작은 비닐하우스도 만들고 뭔가 길러보아라. 농협 같은 곳에 가서 농사를 지을 때 어떤 지원을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지도 알아보아라. 시골에 살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혹시라도 질병이 있다면 육체가 허락하는 아주아주 작은 일이라도 찾아보아라. 내가 천상병 시인을 내 책에서 언급하였을 때 언급하지 않은 말이 있다. 천상병 시인이 고문후유증으로 몸이 정상이 아니었음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거의 매일 술에만 계속 매달려 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이노의 답변 04

구글이 2006년 유튜브를 인수하였을 때는 ‘인수할 만하지 뭐’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2014년 구글이 보일러 온도조절기 회사였던 네스트를 엄청난 거금을 주고 인수했을 때는 ‘얘들이 미쳤나’ 생각했다. 아무리 애플 출신이 많은 회사라고 해도, 온도조절기를 휴대폰으로 조정 가능하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현재 네스트의 주요 제품은 “와이파이로 연결되는 센서 기반의 자가학습 및 프로그램 입력이 가능한 온도조절기, 연기 및 일산화탄소 감지기, 스마트 스피커, 라우터”로 나온다. 온도조절기는 손으로 버튼을 눌러서 손쉽게 할 수 있고,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서 설정 온도를 바꿀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와이파이로 연결해 학습까지 시켜가며 프로그램을 입력한다고 해서 과연 에너지 비용이 얼마나 절감될까 의심된다. 연기감지기? 소방용 연기감지기 센서는 한국에서도 6천 원 정도면 얼마든지 구매 가능하고 그것을 휴대폰에 연동시키는 것도 절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스마트 스피커도 그렇고 라우터 역시 대단한 상품이 전혀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휴대폰을 이용하는 새로운 기술이라든가 인공지능이라는 게 종종 너무 과대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다(이 글을 쓰는 중에 구글에서 스마트 스피커 사업을 접으려고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챗 gpt 역시 사용하여 보니 머리에 든 건 없는데 아는 척하려는, 알려고 하지만 실제 노력은 하지 않는 게으른, 세부적인 것은 침묵하고 그저 둥글게 둥글게 말하여도 뭔가 똑똑해 보이는 줄로 아는, 닭대가리 블로거들이나 사용할 수준으로 보였다.
자율주행차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거 내 생애에는 안 나올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자율주행 기능은 결국 각종 센서가 보내는 신호들과 이미지를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데 인간 말종들의 행동은 그 모든 데이터를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륙횡단 트럭들을 자율주행으로 만들고 맨 앞 트럭은 사람이 운전하고 그 뒤의 트럭들은 그를 쫓아가는 방식은 기차와 경쟁하는 것이기에 경제적으로도 가능한 얘기겠지만(트럭 운전자의 운전 시간이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으나 땅덩어리가 큰 호주 같은 나라에서 유용할 듯) 100% 자율주행 차량이 과연 가능할까 여전히 나는 의심한다.
AI가 미칠 영향: 번역을 하였을 때 몇 개월간 번역가들을 고용하여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실력이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높지만 아주 탁월한 수준에는 못 미치는 번역가들의 원고는 어디서 틀렸는지를 확인하여야 하기에 결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여야 했다. AI는 그 중상위권 번역가들과 비슷하다. 누군가는 AI가 제시한 것을 검토하여 오류가 없는지를 검토하여야 한다(요즘 해외 대형출판사들이 국내 출판사와 판권계약을 할 때 AI 번역 금지 조항을 넣는 이유는 AI에게 책 내용이 입력학습되는 위험뿐만 아니라 오역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고객이 제시하는 문제 역시 AI가 응대를 한다고 하여도 AI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기 마련이므로 누군가는 계속 체크하여야 한다. 결국 AI 시대는 최상위권이 아닌 사람들을 하류로 내려보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전체를 파악하는 최상위권 사람들은 더더욱 높은 위치로 올려가게 될 것이다. 즉 사무공간에서 정형화된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공무원을 포함한 중산층의 일자리들은 점차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며 이러한 대체는 인구 감소에 따라 증가될 것이다. 다만 그 대체 속도가 실제로 어느 정도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AI가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일자리는 몸을 움직여 작업을 실행하여야 하는 블루칼라 분야이다. 자동차 정비를 예로 든다면 바디 수리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이 직접 해야 할 분야로 예상된다.
[내가 애들을 다시 키운다면 가장 먼저 이과적 호기심을 많이 갖도록 교육할 것이다.]

세이노의 답변 05

나는 감사패를 여러 곳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받았는데 한 번 휙 쳐다보고는 다시 상자 속에 처박아 놓은 후 버리기도 했고 이곳저곳에 그냥 쌓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에 담뱃갑보다 약간 큰 나무 감사패를 받았을 때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회상에 잠시 빠져들었다. 어느 기부단체에서 내가 기부한 지 35주년이 되었다고 보낸 것이었다. 33살에 매달 1만 원을 자동 납부하기 시작한 것이 첫걸음이었는데 한 해도 거르지 않았고 지금은 액수가 좀 된다. 33살 때는 빚이 여전히 있었지만 조금씩 수입이 쌓여가던 시기였다. 나는 기부를 하려면 먼저 가족부터 챙기고 직원이 있으면 그 직원부터 챙기라고 권유한다. 그 수준을 넘어가면 그때 가서 비로소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 순서상 맞다. 삼영산업이 경영악화로 인한 누적부채 160억 원 때문에 직원 전원에게 해고 통지를 하였다는 보도를 보았다. 지난해 작고한 창업주는 1조 기부왕으로 유명하였다. 순서가 잘못된 기부로 보인다.

한국에서 기부금은 기부금 전액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특례기부금(예전의 법정기부금)과, 기부금 일부에 대해(상황에 따라서는 전액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일반기부금(예전의 지정기부금)으로 나뉜다(정치자금 기부금은 논외로 한다). 세액공제의 의미는 기부액이 1억인 경우 기부를 하지 않으면 부과될 세금을 완전 혹은 일부를 면제하여 준다는 뜻이지 세금납부 금액에서 1억을 깎아준다는 뜻이 아니다. 기부금에 대한 법은 기본적으로 소득세법이 법인세법을 추종하므로 법인세법 제24조를 먼저 보고 소득세법 제34조를 보면 된다. 법적으로 특례기부금을 모을 수 있는 기부단체는 받을 수 있는 기부단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와 바보의 나눔, 2개뿐이다. 그 외의 모든 기부단체들은 일반기부금을 받는 곳들이다.

기부단체들은 “매년 국세청에 재무 현황을 공시하고 행정안전부에 보고하는 법적 의무를 지키며, 매년 외부 감사 진행 후 감사보고서도 공개”하면 장땡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책에서 아름다운재단에 대해 공개적으로 신뢰를 버렸다고 썼고 그 입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름다운재단 초기에는 사무용품 구입 내역까지도 자세히 나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두리뭉실해졌고 그 두리뭉실이 정치색이 비슷한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22년도 사업보고서에서도 사회참여 부분을 보면 개인지원과 단체지원이 동시에 발생한 경우 그 비용 분배는 나오지도 않았고, 다른 사업부분에서 나오는 단체들과의 중복 여부 확인도 없고 단체 이름은 한 군데도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재단은 다른 시민단체들과 나눠 먹기 비슷한 행위를 하는 곳이라는 의혹을 갖고 있다.

종교단체에서 사용하는 수법: 선교용 차량을 구매한다고 하고 여러 명에게 돈을 받는다. 차량 구매 영수증을 기부자 개인에게 따로따로 보여주면서 고맙다고 한다. 기부한 사람들은 자기가 준 기부금으로 차를 구매하였구나 생각하지만 사실은 찻값의 몇 배 금액을 기부받은 것이고 구매대금 이외의 금액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모든 기부자 명단과 기부금액, 사용처가 아주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믿기 어렵다.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수법: 의대나 법대 같은 곳에는 이미 부잣집 애들이 많이 다닌다. 기부금을 줄 때 성적 위주로 장학금을 주지 말고 정부에서 정한 차상위계층 이하인 경우에만 주도록 요구해야 한다. 학생의 통장에 장학금을 입금시킨 뒤 다시 되돌려받아 교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 경우 이력서에 장학금을 받았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어쨌든 기부문화가 확산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의하여 구체적으로 고민하여 보겠다.
그에 앞서 실험적으로 아래 제안을 던져본다. 부자들이 얼마나 이 글을 볼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건축 전반에 대해 수십 년 경험자이며 그 어떤 자격증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구조, 설계, 전기, 급수배수, 소방전기, 소방기계, 통신, 냉난방, 환기, 주차, 물탱크, 정화조, 집수정, 실내마감 등등에 대해 전체를 구석구석 아는 빠꼼이다. 건설사가 일하는 모습이 하도 답답하여 껍데기 건설사를 인수 후 10년 이상 경영한 적도 있는데 순전히 내 공사만을 수행하였다. 내가 자신하는 것은 서울 근교 이내에 대지가 있고, 인입전기 900Kw 미만이며 분양이 목적이 아니라 임대 목적인 상가건물의 건축주가 내 도움을 받을 경우 상당한 비용을 절약할 뿐 아니라 유지보수관리에 있어서도 유리한 건물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건축을 도와주는 대신 건축주는 기부를 하는 건 어떨까. 조건은 최하 억 단위의 금액을 공동모금회에 실제로 기부하는 것이고 나 개인은 1원도 이익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이노의 답변 05

답이 좀 길어질 듯하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아프리카, 남미, 북유럽 등을 여러 번 혼자 다녀오면서 나는 내 사진은 물론 풍경 사진조차 한 번 안 찍었다. 거래처 사진만 찍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어떤 소설의 영향을 어릴 때 너무나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전혀 아니었다. 60명 중 절반 아래에서 맴돌았으니까. 그래도 소설은 계속 꾸준히 읽었다. 고1 때였나? 1968년판 현대세계문학전집(신구문화사)을 친구집에서 한 권씩 빌려서 읽었을 때 제1권에는 존 파울즈의 ‘콜렉터’와 뮤리엘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가 있었다. 그것들을 흥미진진하게 읽고 나서 콜렉터에 대한 4페이지 정도의 해설(그 소설의 번역자이자 영문학자였던 정종화 교수가 쓴 것이었다)을 한자가 많아 낑낑대며 읽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그저 나비 채집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던 한 남자가 졸지에 부자가 된 후, 평소에 사모하던 미란다를 납치하여 지하실에 가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이어가다가 그녀가 죽자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서는 얘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창조와 복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이 숨겨져 있는 소설이었던 것이다(이 소설을 영화나 연극으로 보면 절대 안 된다). 그림을 그리는 미대생인 미란다는 남자가 나비를 죽여 채집하거나 사진을 찍어 복제하는 행위를 경멸하는데 나는 그 영향을 받아 사진기를 멀리하고 창조적 행위를 열망하면서 그녀가 좋아하였던 G.P. 같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내 삶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어쨌든 어떤 소설을 읽은 뒤 비평 내지는 해설을 찾아 읽어보는 습관이 그때 생겨났다. 책을 읽기 전에 비평이나 해설을 먼저 읽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읽은 후 내 생각과 비교하는 게 때로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도 되고 재미있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내 생각과 크게 다른 경우가 적어지면서 그만두었다.

군대에서 도서관 관장을 할 때는 매일 저녁 이후 적어도 1, 2권의 책을 읽었는데 90%는 인문서적, 시집, 소설이었다. 도서관은 미군들이 사용하던 콘셋막사 안에 내가 만든 것이고 점호시간 이후에는 창문을 담요로 덮어 불빛이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책을 읽다가 야전 침대에서 잤다. 읽기 어려운 문장은 국어사전을 뒤져가며 이해가 될 때까지 읽은 덕분에 내 문해력이 갑자기 늘었고 그다음에는 공부머리가 생겼음을 느낄 정도로 문장 이해가 빠르게 되었다.

소설을 많이 읽었기에 매년 12월에 신춘문예 공고가 신문에 뜨면 가슴이 두근대곤 했었다. 그러다 1977년 12월에 이번에는 하나 써보자 하는 생각에 뒤늦게 1주일을 매달려 단편소설을 쓴 뒤 한국일보에 친구 이름을 필명으로 하여 ‘어느 하루’라는 단편소설을 마감시간이 다 된 시간에 직접 방문 제출하였는데 1978년 1월6일 보도를 보니 본선에 올라간 작품 5개 중의 하나로는 선택되었다. 그래서 신이 나서 1979년 동아일보 중편모집에 두 달 정도 원고를 써서 응모하였지만 본선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그때 당선작이 이문열의 ‘새하곡’이었고 읽어보니 나는 쨉도 안 되었다. 그리고 그해 발표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었을 때 나는 소설가의 꿈을 깔끔하게 완전히 던져 버렸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간단히 메모를 한 뒤에는 다 읽은 책 갈피에 끼워 넣었다. 책 자체에 메모를 써 놓기도 했고 어느 책이건 밑줄을 그었으며, 독후감은 전혀 쓰지 않았다. 소설을 쓰고자 했을 때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몇 권 보았다. 내 기억에 나를 제일 많이 일깨워 준 책은 서두에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를 제시하면서 그 광경을 머릿속에 투영시킨 후 “달 밝은 밤”, “수루”…. 등등에 대해 하나씩 상상하여 글로 표현하여 보라는 내용이 서두에 나오는 책이었다(책을 오래전에 분실하였기에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파고들었던 최인훈인데 검색하여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글쓰기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두뇌에 뭐가 이미 들어가 있는지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본다. 때문에 우선은 글쓰기보다는 소설이나 시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인문서적들을 어려운 문장 하나도 놓치지 말고 분명히 이해하면서 읽어나가야 두뇌가 훈련되면서 채워지게 된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특히, 읽기 지루한 책들을 포기하면 안 된다. 그게 문해력 허들이니까. 한편, 유튜브 영상으로 전달받는 지식의 양은 그 시간에 글로 쓰여진 것을 읽음으로써 얻는 지식의 양의 10% 수준인데 왜들 그렇게 유튜브를 볼까? 문해력이 바닥이기에 머리로 읽는 것은 잘 안 되고 귀로 듣는 게 편해서가 아닐까? 정신들 좀 차려라. 결론: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이해하며 나가는 읽기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소설은 독서 후에 비평, 해설, 심사평 등을 읽어보고 자기가 어떻게 읽었는지를 비교하여 보는 것을 권유한다. (사족: 소설 속 주인공 중에서 커피라도 한잔 같이 마시자고 하고 싶은 인물이 딱 한 명 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서 나오는 진희였다. 나는 이 소설이 나온 지 10년 정도 지난 후에야 읽었다.)

세이노의 답변 08

주로 먹물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 700쪽이 넘는 내 책을 다 읽으려면 시간이 엄청 소요되는데 과연 읽었을까? 내가 확신을 하는 것은 내 책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10명 중 9명은 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자가 절대 아니며 뉴스나 잡지 원고를 작성하고자 읽어본 척하는 자들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니 뭔가 비평은 하여야 할 것 같고 지식인임을 보여주는 쌈박한 글을 쓰고도 싶은데 시간은 없으니 그저 돈과 관련된 내용만 훑어보거나 그것마저도 제대로 읽은 자가 절대 아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책이 베스트셀러라니까 수많은 곳에서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는데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기자들 포함) 거의 모두는 내 책에 대해 대충 알아보고 나를 뉴스거리 중의 하나로 생각하여 보낼 뿐이지 책을 다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메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출연 여부를 논의할 때, 나의 조건 중 하나는 PD와 진행자가 “내 책을 반드시 다 읽었을 것”이었다.
‘무조건 부자가 되는 것만이 최고의 삶’이라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 없었고 지금도 없다. 내 글의 전제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이고 상당 부분은 그 전제와는 무관하게 life와 living을 후회 없이 영위하는 방법을 위한 것이다. 즉 all or nothing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부자되기’가 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면 너의 독해력을 의심하거나 주저 없이 책을 버려라.

세이노의 답변 09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대가가 빨리 주어지기를 바라지는 말라’는 내 말을 어떤 사람들은 ‘자본가들이 직원들을 더 많이 피 빨아먹으려고 하는 수작’으로 해석할 것이다. 그들은 세이노가 말하는 세상의 기준이라는 것이 사실은 자본가나 사장이 바라는 기준이라고도 말할 것이다. 그들은 ‘세이노의 말 믿으면 똥 된다’고 외치고 다닐지도 모른다. 내가 책에서 기회비용과 대체비용을 언급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역량을 키워놓았는데 회사에서 대우를 소홀히 한다면, 그리고 그 기간이 1년 이상 지속된다면, 너를 대우해 줄 다른 회사를 찾아 나서라. 네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어 있음에도 열정페이나 준다면 네가 사장을 갈아 치워야 하므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제대로 된 사장이라면 네가 사표를 낼 때 너 같은 사람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한 대화 요청이 없다면 너는 너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열정페이는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나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영역에서 발생한다. 열정페이에 대한 가장 좋은 복수는 네가 회사에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게 만들고 나서 다른 회사로 제대로 된 대가를 받고 이직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 회사에서 제발 좀 다시 돌아와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그 복수는 제대로 한 것이 된다.

세이노의 답변 09

이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았었지만 답을 여기서 처음 한다. 나의 친모는 내가 생후 6개월경 되었을 때 사망하였고…. 중3때 강원도 인제의 어느 산 중턱에 있던 그 무덤에 혼자서(길을 안내해 준 그 지역 사람과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갔었다. 마지막이라고 한 이유는 그날 소주 한잔을 무덤에 부으면서 “저 여기 다시는 안 오겠습니다”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긴 얘기가 있기는 하지만 ….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생각하면 된다(삶이 혹시라도 흔들린다면 그 시를 읽어보아라. 세이노가 하지 않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세이노의 답변 11

나의 아버지는 정말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환갑잔치 때 누군가 계속 술 한 잔을 끈질기게 권유하자 분노하여 “안 마신다고 했잖아!” 소리 지르며 잔칫상을 뒤엎어버려 파투가 났던 오래된 기억이 내게 남아있다. 왜 아버지가 술을 전혀 안 드셨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일본 유학 후 첫 의사생활을 만주에서 하였는데 어느 날 밤, 혼자 살던 일본인을 술 먹고 수술하다가 실수로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2-3일 후 해방이 되면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기에 북한의 고향으로 도망쳤으며 그때 술을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었다(오해하지 마라. 내가 아버지를 의사로는 100% 존경하지만 아버지로는 나하고의 세대 차이가 너무 벌어져 있어서 였는지 일머리 잡는 교육과 인간 육체의 실상을 일찍 보여준 것 이외에는 별로였다).
억지 술자리는 나도 정말 끔찍하게 싫어했다. 술 먹고 늘어놓는 개소리나 헛소리도 듣기 싫었고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여 듣는 것도 싫었다. 나는 내가 내 정신줄을 계속 통제하기를 원하기에 정말 적당히만 마시거나 안 마시는 것이 원칙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재벌급 중국계 미국인은 술자리에 빠짐없이 참석은 하지만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면서 탄산수만을 마셨다(나이트클럽에서도 그랬다).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서 술은 못 먹지만 여러분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참석했다는 게 그의 발언이었다. 그랬던 그가 좀 친해진 후 일본에서 단둘이서 식사를 하는데 나마죠조(사케의 종류)를 시키더니 자기 술 먹는 거 절대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같이 한잔하자고 하더라. 술 먹고 개판 치는 사람들이 싫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
(나마죠조는 나도 즐겨 마시고 빈 병을 모아 조명을 만들기도 했다).
술을 싫어하는데 억지로 좋아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도 없다. 술자리에서는 술 대신 다른 것을 마시고 남들 말하는 정도만큼은 너도 말을 해야 한다. 그 다음날에는 숙취해소 음료를 네 돈으로라도 사서 돌려라.

비법도 있는데 데이원 출판사 대표를 통해 너에게만 개인적으로 따로 전달될 것이고 절대 공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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