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식당에서 순화는 딸과 함께 칼국수를 먹었다. 다섯 평 남짓 오래된 가게가 금요일 저녁 한 끼를 해결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기계를 쓰지 않고 사람 손으로 반죽했고, 멸치 우려낸 국물에 감자와 청양고추를 넣어 감칠맛이 났다. 제법 소문난 맛집이라 벽에는 ‘잘 먹고 갑니다’ ‘번창하세요’ 등 푸근한 메모들이 빼곡했다.
텔레비전에서는 8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샛별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되어 신축 대단지 ‘뉴스타리움’으로 변신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식당 손님들 시선이 일제히 뉴스 화면으로 쏠렸다. ‘집주인들 떼부자 됐겠네.’ 누군가 던진 한마디에 홀이 잠시 수런거렸다.
“내일이면 저기로 들어가시는 거예요? 으리으리하네요. 여기처럼 작은 가게는 다 잊어버리시겠네요!”
그릇 나르던 알바생이 밝은 목소리로 순화에게 말을 건넸다. 주방에서 만두를 들고 나오던 주인 여자가 한마디 얹었다.
“으리으리하긴 개뿔! 어디 살든지 사람 밥 먹고 사는 건 다 똑같아! 여기, 만두는 써비스!”
순화는 젓가락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만두를 집으며 슬며시 웃어 보였다.
순화는 새벽부터 주섬주섬 짐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엄마, 우리 완전 포장 이사야. 내 손으로 짐 싸고 푸는 사람이 요즘 어디 있어. 귀중품만 잘 챙겨.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이사 끝나면 부를 테니까 편한 곳 가서 쉬고 있어.”
딸의 성화로 난생처음 포장이사를 하게 됐지만 손때 묻고 낡은 살림이 남들 눈에 고스란히 드러날 생각을 하니 순화의 마음은 영 불편하기만 했다.
늦은 오후, 이사 잘 마쳤다는 딸의 연락을 받았다. 순화는 새 아파트 단지 뉴스타리움의
문주를 들어서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칼국숫집에서 듣던 뉴스가 귀에서 웅웅거렸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이라고 했다.
뉴스타리움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49층짜리 건물이 74개동, 총 1만 4천 세대의 대단지였다. 이탈리아 건축가가 설계부터 참여해 지었다는 크고 높고 반짝이는 새것.
벽을 휘감아 두른 대리석과 유리를 사용한 커튼월까지 어느 하나도 눈부시고 말끔하지 않은 게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뻗어 있는 빛의 기둥들 앞에서 순화는 말문이 막혔다.
관리실에서 입주민 신분을 확인하고 카드키를 받았다. 초고속 엘리베이터 안에서 순화는 몸이 붕 뜨는 이질감 때문에 귀가 먹먹하고 어지러웠다.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
분명히 예전 살던 자리에 지어진 집인데도 너무나 반듯하고 새것이어서 지나치게 깍듯한 사이처럼 서먹했다.
“엄마 왔어? 얼른 들어와. 여기 완전 대박!.”
초인종을 누르자 딸이 나왔다. 순화는 딸을 보자마자 긴장으로 굳었던 얼굴을 활짝 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얼굴을 붉혔다. 온통 설탕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반짝이는 집 안에 수십 년 이고 지고 살아온 순화의 손때 묻은 살림이 검게 웅크리고 있었다.
순화는 낡은 패브릭 소파 한가운데 평소에는 방석으로 가려놓았던 얼룩이 드러난 것을 보았다.
어릴 적, 딸아이가 포도주스를 엎지른 흔적이었다. 빨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큰맘 먹고 아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열어준 생일 파티라서 행복한 기억이었지만 새집에서는 지저분한 얼룩으로만 보였다.
“엄마, 내가 지금 하는 일 잘되면 살림살이 새걸로 몽땅 바꿔줄게. 기다려!”
엄마 마음을 금방 읽어낸 딸이 큰소리쳤다.
이사 첫날, 두 사람은 자장면과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딸은 이사하느라 피곤했는지 먼저 잠이 들었다.
거실로 나온 순화는 비로소 집 안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참 어렵게 지어진 집이었다. 재건축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중간중간 위기를 겪었다. 시공사 선정에 얽힌 특혜가 드러나 조합장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사업시행인가를 마치고 조합원 동 호수 추첨을 할 때 순화는 기도했었다.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남들보다 더 좋은 것 갖길 원하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지겹도록 마주했었기에 순화는 무사히 새집이 완성되기만을 바랐다.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집이길 원했다.
기도 덕분이었을까. 순화가 덜컥 당첨된 곳은 평수는 작았지만 강을 바라보는 고층이라 많은 사람들이 탐내던 곳이었다. 집이 완성되면 가격 상승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들을 했다.
순화는 거실 유리창 앞에 서서 유리 위에 손을 대보았다. 강이 보였다. 주공아파트 시절의 강은 장마철 되면 영락없이 범람해 거주민들에게 물난리를 안겨주더니, 새로 지어진 집에서 바라보는 강의 밤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강 건너편에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 불빛과
강변을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서로 어우러져 온통 보석을 뿌려놓은 듯 반짝거렸다.
하지만 커튼도 달지 못한 새집은 순화에게 아직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거실 유리창 위에 순화의 모습이 반사되어 비쳤다. 좁은 어깨와 주름지고 푸석한 얼굴을 가진 여자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순화는 눈을 한번 꼭 감았다 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순화는 아파트 곳곳을 돌아보았다. 밤늦게 귀가하는 딸을 기다리며 순화가 앉아 있던 벤치, 여름 정원의 배롱나무, 건물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 등 순화가 마지막까지 아끼며 눈에 담아두었던 풍경은 사라지고 없었다.
순화는 아파트 1층 시니어 카페에서 주공아파트 시절 단짝 친구인 정애와 영주를 만났다. 친구들은 순화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이사했다.
“사우나 가봤어? 놀라지 마, 여기 수영장도 있어!”
“밥하기 싫을 때 많잖아. 나 혼자뿐인데 제대로 차려 먹기도 싫고. 석식 서비스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새집 지어지는 동안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친구들은 밀린 수다를 늘어놓았다. 순화는 친구들 이야길 듣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놓이며 내 집으로 한 발 더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날 밤, 순화는 남편의 유품들을 하나씩 풀면서 손바닥으로 가만히 만져보았다. 남편은 통증이 밀려올 때 순화가 손바닥으로 등을 쓸어 내려주면 잠깐씩 편안해했다.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집이 다 뭐라고. 병을 고쳤어야지.
가족들 보금자리를 팔아 자기 몸 고칠 생각 대신 병을 감추고 있던 사람. 낡은 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되면 큰 재산으로 돌아올 테니 무슨 일 있어도 집 팔지 말라고 당부했던 남편은 한 줌 재가 되어 다른 곳에 묻혔다.
순화는 오래된 앨범을 꺼내 한 장씩 넘겨보았다.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들 너머로 이제는 사라져버린 예전 아파트 풍경들이 보였다.
요새는 사진을 찍어도 인화해서 앨범에 담아두는 일이 없다. 손쉽게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늘어났지만 의미를 오래 기억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산다는 것은 오래된 기억들 위에 새롭게 기억할 일들을 꽃다발처럼 놓아두는 일이라고 순화는 생각했다. 어느덧 순화의 뺨이 눈물에 젖었다. 남편 몫까지 새집에서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낼 거라고 다짐했다.
순화의 일상이 서서히 변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푸른 강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딸이 출근한 뒤에는 시니어 카페로 내려가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숲이 보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저녁이 오면 헬스장에서 간단히
운동을 하고 딸의 귀가를 기다리며 식사 준비를 했다. 딸이 야근하는 날이면 혼자 석식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저녁밥 먹고 난 뒤엔 사우나에 들러 피로를 풀고 개운해진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순화는 새집이 안겨다 주는 편리함과 소박한 기쁨에 기꺼이 젖어 들었다.
“나, 폭탄 맞았어. 어쩌면 좋냐.”
순화와 정애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영주가 왔다. 발걸음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급박했다. 손에는 관리비 고지서가 들려 있었다.
“한 달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카페 가서 차 마시고, 노래방 가고, 헬스장, 수영장 두루두루 다녔더니 그게 이번 달 관리비에 몽땅 청구됐어.”
영주의 하소연에 정애가 말을 받았다.
“나도 그래. 새집 오니까 처음엔 좋았는데 그만큼 대가가 따르는 거야.”
“정애야, 우리처럼 연금 받아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냐?”
영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즉 이 집 털고 나갔어야 했나? 사람들이 돈 싸 들고 와서 집값 세게 부를 때 확 팔아
버릴 걸 그랬나? 난 그저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었을 뿐인데.”
정애가 풀이 죽어 한마디 거들었다.
“관리비만 걱정이겠니? 세금 폭탄도 기다릴 텐데. 재산세, 보유세, 줄줄이야. 게다가 재건축해서 집값 올랐다고 세금까지 내란다. 내가 당장 이익 본 게 없는데. 집을 팔아야 내 손에 돈 들어오는 거지.”
“각오했잖아, 주변에 미리 집 팔고 나간 노인들 많아. 솔직히 남들한테 이런 얘기 하면 돈 벌려고 다 쓰러져가는 집에 악착같이 남아 있더니 엄살 심하다는 소리만 들어.”
정애가 타이르듯 영주에게 말을 건넸다.
순화는 집에 대해 쏟아내는 두 친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침 커피가 오늘따라 씁쓸했다. 순화 입장에서는 이제 새집과 익숙해지는 중이었는데 맑은 물 밑에 가라앉은 탁한 찌꺼기를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순화는 예전 집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샛별주공아파트’를 연탄 때던 낡은 아파트라며 은근히 조롱했었다. 인터넷에 ‘연탄재는 여기에’라고 적힌 옛날 표시판 사진이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집이 원래부터 낡았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순화는 집의 모든 시간을 기억했다.
집은 지어진 지 10년 차를 넘어갈 때 가장 생기가 넘쳤다. 새집 냄새가 다 빠지고 초기에는어수선했던 아파트 주변 근린시설이 오밀조밀 생활에 맞게 들어서며 사는 게 한결 편리해졌다. 소박하던 정원의 나무들도 앞다투어 울창하게 자라났다. 젊은 집이었다.
20년 차가 넘어가자 사람들은 집의 가치가 꼭대기를 찍었으니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순화는 어느 날 아파트 단지에 깔아놓은 보도블록이 마구 뒤틀린 것을 보았다. 땅속에 숨어 있던 나무뿌리들이 어느새 굵게 자라 블록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대로 집은 점점 낡기 시작했다.
어느 해 폭설이 내렸다. 눈을 잔뜩 매단 나무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다. 지하 주차장이 없어 가까스로 지상에 이중 삼중 주차해놓은 차들 위를 덮쳤다. 열대야가 극심하던 여름, 냉방기기 과열로 정전사고가 나서 단지 전체가 블랙아웃을 겪었다. 주민들은 주말에 장을 봐 꽉꽉 채워 넣었던 냉장고 속 다 상해버린 식재료들을 치웠다. 전기로 움직이는 가정용 의료기기 이용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위급해진 환자들을 앰뷸런스가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집이 낡을 대로 낡아 주거지로서 명분을 이어갈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아파트가 지어진 지 40여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재건축 이야기가 나왔다. 추진위원회가 꾸려진 다음 해, 낡은 집은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더 이상 사람 살기 힘든 곳이라는 선고였다. 이후, 조합이 결성되고 관리처분인가를 받는 등 숱한 절차들 속에서 서로 입장 다른 사람들끼리 많은 다툼이 있었지만 결국 다 쓰러져가던 낡은 집은 재건축되어 다시 태어났다. 경이로운 선물 같았다.
순화가 선택한 새집은 원래 살던 집보다 좁았다. 덕분에 입주 시 내야 했던 조합원 부담금도 없었다. 순화가 그나마 걱정 없이 새집에 입주했던 것과는 달리 친구들 사정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새집이 슬며시 계산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순화도 슬그머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에잇, 몰라, 죽기야 하겠니? 안 되면 집 내놓지 뭐. 지금은 즐겨. 그동안 우리 너무 고생했잖아.”
영주는 포기한 듯, 한마디 던지며 고지서를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숨통 좀 트일 방법이 있는데.”
친구 셋 중 주변 돌아가는 소식에 제일 민감한 정애가 뉴스를 던졌다.
“입주민 대상으로 디카시 콘테스트라는 거 열리더라.”
정애 말 한마디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디카시?”
“사진 한 장 찍고 어울리는 짧은 시 한 편 쓰는 거야.”
영주의 질문에 순화가 나서서 대답했다.
“나 이곳에서 잘 살고 있다, 이 아파트 완전 좋은 곳이다, 보여주는 거. 그런데 놀라지마. 상금이 자그마치 관리비 1년 치야.”
잔뜩 흥분한 정애의 설명 중 관리비 1년 치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대박이네. 상 타면 두 다리 쭉 뻗고 1년 버틸 수 있는 거잖아? 순화, 정애 너희들, 사진 잘 찍잖아? 솔직히 시가 별거냐? 내가 시인이다. 도전해!”
영주 얼굴에 갑자기 활기가 돌았다.
“그래? 너만 시인이냐. 나도 시인이야!”
친구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을 올렸던 집 걱정을 어느새 내려놓고 웃음을 터뜨렸다. 순화는 관리비 1년 치라는 파격적인 상금도 탐이 났지만 디카시에 더 마음이 갔다. 학창 시절, 짧은 기간이었지만 방송반 활동으로 점심시간마다 친구들에게 시 낭송을 해준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살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도전이 새 아파트에 잔뜩 눌려 있던 기분을 바꿔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순화는 오랜만에 칼국숫집에 들렀다가 알바생에게 동네 주민센터에서 시니어 대상 디카시 강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강사는 사진도 찍고 시도 쓰는 유명 작가라고 했다.
“매일 나만의 한 컷을 찾으세요. 늘 보던 사물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세요. 그렇게 하루하루 모은 사진 속에서 본인도 몰랐던 진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강의 첫날,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나를 찾는 디카시 수업’ 취지를 설명했다. 숙제도 내주었다. ‘최근 나를 놀라게 한 사물’을 한 컷 담고 3~5줄의 짧은 시를 적어 오는 거였다.
“오자마자 새집이 날 놀라게 했어. 아침에 화장실 들어갔는데 변기 뚜껑이 벌떡 일어서는거야, 내가 얼마나 놀랐겠어. 화장실 귀신인 줄 알았네. 그냥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니까.”
“그럼 정애, 최근 너를 놀라게 한 사물은 화장실 변기 뚜껑이겠네?”
순화 말에 친구들은 와르르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아파트, 별나게 만들어놓은 게 얼마나 많은지 몰라. 나, 베란다 나갔다가 시스템 오류로 갇혔었잖아. 핸드폰으로 관리실에 연락해서 겨우 구조됐지.”
“우리 옆집 할머니는 하필 핸드폰도 안 들고 나갔잖아. 인증을 해야 문이 열리는데,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할 수 없이 속바지 벗어서 사람들 보라고 휘둘렀다나? 나 좀 구해달라고.”
“핸드폰 놔두고 어딜 돌아다녀. 여긴 일일이 입주민 인증 안 하면 아무것도 못 해.”
순화와 친구들은 강사 지도에 맞춰 자신들이 본 것을 사진과 시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열중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었다. 사우나를 가거나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일보다 좋았다.
순화는 새 아파트 단지를 구석구석 산책하며 매일 나만의 한 컷을 부지런히 찾았다.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지금 쓰는 폰이 너무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좋은 폰이 있다면 사진을 더 잘 찍을 것 같았다. 순화는 슬쩍 폰 대리점도 기웃거렸다. 전에는 없던 욕심이었다.
찍은 사진을 바로 출력해보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 꽤 쓸 만한 즉석 인화기도 중고로 장만했다. 순화는 당일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을 출력해 거실 벽에 붙여놓았다. 집에 대한 고민도 잠시 내려놓았다. 찍은 사진이 여러 날 쌓이면 거기 어떤 모습의 내가 드러날까 기다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와는 달랐다. 순화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풀숲 어딘가 떨어진 특별한 깃털 하나를 찾는 기분이었다.
매주 한 번 열리는 디카시 수업에 영주가 보이질 않았다. 처음엔 몸살이 났나 싶었다. 쉬는 시간 정애가 순화에게 다가와 영주 소식을 전해주었다.
“영주랑 아들, 딸이 모여서 가족회의 했대. 엄마도 나이가 있고 앞으로 집 가격이 너무 높아지면 상속세금도 감당 못 할 거니까 더 늦기 전에 집 팔아서 자기들에게 일찌감치 증여해달라고 했다는 거야.”
“그럼 영주는 어디 가서 살아?”
순화는 깜짝 놀라 정애에게 물었다.
“난들 아니. 하긴, 집값 많이 오르긴 했지. 하지만 사는 건 똑같잖아. 집값 오르든 내리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달라진 게 있니?”
“우리가 미리 교통정리 안 해두고 갑자기 죽어버리면 자식들에게 세금 폭탄 들이밀고 가는 거잖아.”
“생각만 해도 싫다. 죽다니.”
정애는 한숨 쉬며 손사래를 쳤다.
“영주가 섭섭했겠네. 그 말 듣고 밖에 안 나오는 거야?”
“그게, 좀 실랑이가 있었던 모양이야. 재건축될 때까지 엄마가 낡은 집에서 고생했는데 뭐 하는 짓이냐고, 자식들끼리도 의견이 달라서 한바탕 싸웠나 봐.”
“그래서?”
“그러니까…… 싸우는 거 말리다가 영주가 넘어져서 좀 다쳤어.”
순화는 정애가 조심스레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맥이 탁 풀렸다.
“어차피 나중에는 다 물려줄 텐데 왜들 그렇게 보챌까. 집이 달아나는 것도 아닌데 엄마에게도 새집에서 살아볼 기회를 줘야지, 그게 자식이지.”
정애는 한마디 덧붙이면서도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제 것 마련하느라 바빠서 그러지. 뭐든지 때가 있는 거니까. 자식들은 지금이 한창때니까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나이 든 사람들이 조금 양보해야지.”
순화는 양보라는 말을 꺼내놓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초저녁에 설핏 잠들었던 순화가 깨어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딸이 현관에 엎어져 있었다. 화들짝 놀라 딸을 안아 일으키려고 하니 술 냄새가 진동했다. 먹지도 못하는 술을 어디서 얼마나 마신 건지 딸 옷자락에는 드문드문 토한 흔적까지 있었다.
“엄마…….”
“얘 좀 봐. 안 하던 일을 하네. 몸이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나, 이제 어쩌면 좋지…….”
얼마 전부터 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친구와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었다. 순화는 결혼 생각 없어 보이는 딸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하고픈 일을 하며 지내는 모습이 좋았다.
엄마 붙들고 딸이 술기운을 빌어 털어놓은 이야기를 순화가 그 자리에서 다 이해할 수는없었다. 딸은 그동안 성실히 모은 월급을 종잣돈 삼아 사업을 크게 불리기 위해 노력하던 중 생각도 못 한 대규모 사기에 걸려들었다고 했다. 투자 금액을 하루아침에 날릴지도 모르는 상태이며 동업 명목으로 모집한 군소 업자들의 계약금도 자신이 모두 물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순화는 울음도 나오질 않았다. 집 밖을 나가면 세상은 못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늙은 엄마가 알려줬어야 했던 걸까. 늦게 본 딸이 귀하고 소중해서 세상 물정 모르게 길렀던 건 아니었는지 순화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딸은 하루 동안 꼼짝없이 누워 있다가 훌훌 털고 일어났다. 사기꾼을 잡아 투자한 돈 되찾고 동업자들에게도 투자금을 모두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경찰에서도 서둘러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순화의 마음은 매일매일 지옥을 헤맸다. 디카시 수업에서도 집중하지 못했다. ‘경찰이 나섰다고 하니 금방 해결되겠지, 내가 동동거린다고 될 일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고 아팠다.
딸은 매일 밤늦게 돌아왔다. 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아침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루는 거실에서 순화가 정애와 통화하며 낸 웃음소리가 딸 방으로 새어 들어간 모양이었다. 줄곧 닫혀 있던 딸 방문이 슬며시 열렸다.
“엄마는 웃음이 나오나 봐. 사진 찍고 시나 쓰러 다니고. 엄마가 작가야?”
목소리가 뭉개지는 걸 보니 딸은 방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너 없는 줄 알았어. 친구랑 잠시 통화한 거야.”
“이렇게 좋은 집에 사니,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
“너, 많이 취했다.”
“다른 엄마들 같으면 이럴 때 집이라도 팔아 도와주겠다는 빈말이라도 했을 텐데…….”
순화는 외마디 소리를 냈다.
“뭐?”
“내 말 틀려? 엄만 늘 그런 사람이었어. 집 한 채 있으니 나 몰라라 아무 걱정 없지? 겉으론 우아한 척, 고상한 척!”
순화는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면 속 깊은 딸아이가 저런 말을 하나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순화가 일어나기도 전에 딸은 일찍 집을 나간 모양이었다. 방은 비어 있었다.
순화는 정애를 통해 영주가 요양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친 영주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했다.
순화는 며칠 후 낯선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남자는 대뜸 거친 말을 마구 쏟아낸 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순화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액땜한 것으로 정리했다.
이상한 일은 줄줄이 일어났다. 하루는 아파트 단지 앞 상가를 지나는데 누군가 순화 앞을 막아섰다.
“김연지 씨 어머니시죠? 미안해요. 딸 일에 끼어들게 해서.”
“누구……시죠?”
순화는 갑자기 나타나 공손한 척 말을 붙이는 노부인이 불쾌했다.
“누구긴 누구야. 엄마는 이렇게 번듯한 집에 살면서 불쌍한 우리 아들한테 이러면 안 되지. 당신 딸이 꿀꺽한 우리 아들 돈 당장 갖고 오라고 해. 아니면 엄마가 대신 갚든지!”
노부인이 달려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순화는 무방비 상태로 쓰러졌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변 도움을 받아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순화는 이웃들 다 보는 동네 한복판에서 영문도 모르고 조리돌림을 당했다. 감당하기 힘든 공포가 순화에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집까지 오는 길에 다리 힘이 풀려 여러 번 주저앉았다. 집에 겨우 도착해서 가까스로 거실 바닥에 몸을 눕혔다. 팔꿈치와 무릎이 군데군데 까져서 피가 배어 나왔다. 순화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에게 서슴없이 달려들던 노부인의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자식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엄마 얼굴은 어딘가 서로 닮아 있다고 느꼈다.
딸은 집을 나간 이후 아직 소식이 없었다. 순화 혼자 적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순화는 다친 곳을 소독한 뒤 거실 바닥에 다시 주저앉았다. 딸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예
전에도 딸이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순화의 가슴
이 심하게 요동쳤다. 경찰에 실종신고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거실 창문 너머에는 여느 때처럼 강이 흐르고 있었다. 순화는 자신이 깊은 강을 건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생전에 한 번도 자기 집을 갖지 못한 분이었다.
언젠가 고모가 살던 집 일대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낡은 빌라를 모두 헐고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세입자 형식으로 그 집에 이름을 올려놨던 아버지에게도 임대아파트 딱
지가 나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완성된 새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한 아들 빚을 대신 갚아주느라, 모아놨던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을 뻔했었던 일은 순화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순화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아들자식 향한 깊은 속마음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남동생은 부모님 돌아가
신 뒤에도 가족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순화는 집이란 인생의 근본이고, 좋은 집은 가족을 한곳에 모아주는 터전이기도 하지만 나쁜 집은 모였던 가족도 흩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편과 결혼한 후 전셋집을 전전하다가 처음 내 집 마련에 성공해서 주공아파트에 입주하던 날, 순화는 가슴이 뛰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입속으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었다.
‘내 부모는 평생 집이 없었지만 이제 나는 집이 있다.’
어쩌면 순화의 딸도 별다른 고생 없이 부모가 살던 집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순화에게 집을 갖는다는 것은 세대를 이어서 꾸준히 이루어가는 위대한 역사였다.
순화 내외가 장만한 집은 초등학교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복도식 아파트 5층이었다. 딸아이는 체육 수업을 하던 중, 햇볕 쬐려고 순화가 베란다에 널어둔 이불을 보고 엄마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푸근했다고 일기장에 썼다.
순화의 모든 시간은 집과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가족사진 찍을 때는 잠시 눈 깜빡임을 참는 것처럼 행복한 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는 게 필요하다고 늘 생각했었다.
하지만 낡은 주공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지어 이사 온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예
전에 살던 집이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나를 조금씩 양보하는 곳이었다면, 남편 여의고 딸도
다 성장한 지금, 순화에게 새집이란 숨겨둔 나를 발견하는 곳이 되었다.
디카시 콘테스트 준비를 하며 매일 조금씩 사진을 찍고 시를 써보는 동안, 순화는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묻혀 있던 나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기도 했다. 여태껏 살았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몸은 어둡고 깊은 물속에 밤새 잠겼다가 가까스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아프고 쑤셨다. 주름지고 메말라버린 피부와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순화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간간이 울적해졌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세월에 풍화된 모래알처럼 점점 작아진 뒤 결국 사라지는 일만 남았다고 스스로를 단념시키고 싶지 않았다. 순화는 수십 년 세월을 버텨왔던 낡은 집이 빛나는 새집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처럼, 젊은 나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내밀한 꿈을 꾸었다. 순화에겐 새집이 필요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자신의 집을 자식 빚잔치에 쓰고 싶지 않았다.
순화는 집을 나섰다. 정애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잔뜩 낀 날이라 서 있는 곳에서 건물 꼭대기가 잘 보이지 않았다. 순화의 집이 어딘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들른 삼거리 식당은 변한 게 별로 없어 보였다. 홀에서 음식 나르던 알바생은 잠시 어딜 갔는지 주인 여자가 직접 음식 주문을 받았다.
“여기, 팥 칼국수 두 그릇 주세요.”
“뜨거운 칼국수는 안 해.”
“안 해요? 왜요? 난 그게 제일 맛있었는데?”
“뭔 소리야. 날씨가 이렇게 푹푹 찌는데. 얼음 띄운 냉 칼국수 해줄 테니까 그거나 먹고 가. 세상이 달라졌으면 거기 맞춰 살아야지! 만두는 써비스!”
주인 여자의 넉살에 순화와 정애는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웃고 나니 마음이 풀렸는지 정애가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됐어. 미안해. 아들 내외가 자기랑 집을 바꾸자고 하네. 며느리가 손자를 서울에서 교육시키고 싶대. 잘됐지, 뭐. 이참에 공기 좋은데 내려가서 남편이랑 산에도 자주 다니고 텃밭도 가꾸면서 살아보려고…….”
정애는 말을 흐렸다. 순화는 울적해졌다. 언젠가 딸이 넌지시 했던 말이 기억났다.
‘엄마, 새집 들어가 살면 뭘 해. 관리비도 훨씬 비쌀 거고, 세금도 엄청 많이 내고 힘들기만 하지. 그냥 여기서 멈추는 게 답일지도 몰라.’
끝까지 고집을 부렸던 건 순화였다. 남편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집을 팔지 않기 위해 아픈 몸 고치는 것도 포기했던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그때 딸은 엄마가 집을 팔아 사업자금 보태주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딸은 지금 돈 때문에 곤경에 빠져 있다. 순화는 자신의 고집이 딸을 힘들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때 집을 정리해서 딸에게 돈을 주었더라면 어렵게 남의 돈 끌어대느라 무리하지 않았을 텐데. 더 많은 기회를 딸에게 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순화의 마음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도 한 번은 새집 살아볼 권리 있잖아. 나이 들었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 딸에게서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어느덧 마지막 수업이라 수강생이 하나둘씩 빠져나간 디카시 수업은 썰렁했다. 순화는 강사와 단둘만 남게 된 수업이 무안하기만 했다.
“원래 시니어 수업은 이렇게 한 분 두 분 그만두세요. 완주하시는 분도 별로 없어 중간에 폐강도 되는걸요. 여기까지 나오신 것만 해도 놀랍고 감사하죠. 그나저나 순화 선생님, 오늘이 마감일 텐데, 디카시 콘테스트 작품은 제출하셨나요? ”
강사가 순화에게 질문했다. 순화는 고개를 들고 강사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온 순화는 그동안 인화해둔 사진들을 거실 바닥에 한 장씩 늘어놓았다.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사진들을 모아보니 그 속에 뭔가 조금씩 축적된 것 같기도 했다.
순화는 생각했다. 새집에서 사진 찍고 시 쓰며 보낸 지난 시간들은 내 인생의 봄날을 다시 찾은 듯 기쁘고 행복했다고.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과 행복을 찾는 일도 좋지만, 자식의 고통을 해결할 열쇠가 될 집을 깔고 앉아 있는 부모는 부모 자격이 없다고. 자식 앞에서 얼굴 들지 못하면 나 자신에게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그것이 순화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었다. 순화는 날이 밝으면 상가 부동산에 찾아가 집을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순화는 바닥에 놓인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집을 팔게 되면 콘테스트 참가 자격이 사라지니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사진들이었다.
순화의 사진은 유달리 불빛을 찍은 것이 많았다. 저녁만 되면 집집마다 켜지는 아파트 창문 불빛들이 그동안 순화의 마음을 움직인 것들이었다. 한 점 불빛마다 하나의 집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동그랗게 모여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울고 웃으며.
밤의 강을 찍은 사진 속에는 영롱한 불빛들이 강물 따라 넘실거렸다. 오늘, 순화 눈에는 그 동그란 불빛들이 수많은 연어 알들처럼 여겨졌다. 연어는 고향 떠나 큰 바다로 나갔다가 알을 낳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제 고향으로 돌아오는 물고기라고 했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 바닥에 힘겹게 산란하는 연어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연어는 몸 안에 터질 듯 가득했던 붉고 둥근 알들을 몸 밖으로 모두 밀어낸 뒤 기운이 다 빠져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했다.
평생 지켜온 재산인 집을 자식 뒷바라지에 사용하고 본인은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 부모의 헌신. 순화는 사진 속 동그라미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순화의 핸드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엄마, 다 끝났어. 집에 갈게.
딸이었다. 순화는 숨을 멈췄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어떻게 다 끝났다는 걸까? 사건이 잘 해결됐다는 걸까? 완전히 망했다는 걸까? 딸의 짧은 문자로는 도무지 내막을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순화는 주방으로 가서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셨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집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거실 바닥에 순화가 찍은 사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사진 속 동그라미들은 더 이상 연어 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열린 틈새로 빛의 고리들이 살며시 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힘겹게 억눌렀던 순화의 진짜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만약 운 좋게도 디카시 콘테스트에서 상을 타면 1년 치 아파트 관리비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이 집에서 1년 더 버틸 수 있다면 집을 지켜낼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얻게 될지도 모른다.’
순화는 거실 한구석에 놓여 있는 컴퓨터로 다가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컴퓨터를 켠 뒤, 디카시 콘테스트 응모 게시판을 찾아 클릭했다. 순화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 중 동그란 불빛이 선명하게 나온 것을 골라 게시판에 올렸다.
순화는 ‘집이란 인생 그 자체, 실패해도 돌아와 비빌 언덕, 정다운 고향, 다시 태어나는 우주’라고 짧게 적어 넣으며 디카시 콘테스트 응모를 마무리 짓고 게시판을 닫았다.
순화의 이마에 땀이 배었다. 이제 딸이 돌아올 것이다. 순화는 밤의 창문 너머 무수히 반짝이는 강변 불빛들을 바라보며 거실 바닥을 딛고 천천히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