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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레이코 이야기: 페루 레이코 공방의 조용한 기적_랜덤 핸드메이드 뜨개키링

마더 레이코의 조용한 기적. 한센인 마을에서 카라바이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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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선의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오래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가장 먼 곳으로 간 사람,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남은 사람 모두의 ‘마더’가 된 가부라기 레이코 이야기
《마더 레이코 이야기: 한센인 마을에서 카라바이요까지》는 국경과 언어, 문화의 경계를 넘어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가부라키 레이코의 삶을 기록한 평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이종욱 박사의 아내로 알려진 레이코의 삶을 처음으로 본격 조명한 책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레이코 자신이다.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여성의 선택과 신념, 그리고 한평생 이어진 삶의 궤적이 조용히 드러난다. 레이코는 젊은 시절 아무런 연고도 없던 한국의 한센인 공동체 성 라자로 마을로 건너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당시 의대생이던 이종욱을 만나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고, 결혼 후에는 하와이와 아메리칸사모아, 피지, 마닐라, 제네바를 오가며 국제보건의 현장을 함께 걸었다. 그러나 그녀의 여정은 남편의 삶에 동행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이종욱 사무총장 서거 이후, 레이코는 다시 페루 리마 북쪽의 빈민 지역 카라바이요로 향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가난한 여성들과 아이들의 곁에 머물며 새로운 공동체를 일구어냈다. 한센인 마을과 카라바이요는 서로 멀리 떨어진 장소였지만, 레이코에게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같은 대답이었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선행담이나 미담집이 아니다. 전쟁 직후 일본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아갔는지, 한국과 일본, 남태평양과 유럽, 그리고 페루를 잇는 긴 여정 속에서 무엇을 지키며 살아왔는지를 담은 한 인간의 기록이다. 또한 빈곤과 질병, 여성의 자립과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현실의 문제 앞에서, 거창한 구호 대신 작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응답해온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종욱과 레이코가 함께 걸어온 사랑과 헌신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연대란 무엇이며, 타인의 삶에 책임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한다. 《마더 레이코 이야기》는 세상을 뒤흔든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 오늘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랐던 한 여성의 조용한 실천이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정보

저자(글) 엄상현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졸업,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저작권법 전공) 수료. 동아일보에서 신동아 및 주간동아 정치담당(국회 출입) 기자, 채널A에서 탐사보도 프로그램 취재팀장, 시사대담 프로그램 에디터 등으로 근무했다. 현재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근무 중이다. 지은책으로 《이종욱 평전: 영원한 WHO 사무총장》이 있다.

목차

  • 프롤로그: 마침내 도착한 자리

    1부 성 라자로 마을의 인연

    1장 두 갈래 길 앞에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 자기만의 방식 / 어머니의 죽음과 셰익스피어 / 첫 봉사와 두려움

    2장 한국행 비행기
    “이제 너는 내 딸이 아니다!” / 성 라자로 마을 / ‘바닷가의 추억’을 부르다

    3장 라자로 마을을 떠나다
    ‘내가 정말 있어야 할 곳일까?’ / 성 라자로 마을의 의대생 / 첫 데이트에 신고 온 푸른 고무장화 / 환영받지 못한 결혼

    4장 국경 사이의 가족
    오후 다섯 시의 애국가 / “내 뱃속이 검은지 확인해봐” / 네 사람의 저녁식사 / 함께 살 수 없는 가족 / 밥그릇 세 개, 접시 세 개, 수저 세 벌

    2부 인생유전: 하와이에서 리마까지

    5장 하와이: 새로운 기회
    가난의 시간 /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6장 아메리칸사모아: 가족이라는 행복
    남태평양의 작은 섬 / 아들과의 행복한 시간 / 피지로 가는 길

    7장 피지: WHO에서 일하게 되다
    비로소 갖게 된 여유 / 남편이라는 울타리 / 새로운 자리

    8장 마닐라: 각자의 삶
    “겁먹을 필요 없어. 그냥 가.” / 몸과 마음의 병 / 다시 떨어져 살다

    9장 제네바: 따로 또 같이
    작은 들꽃 / 리마로 떠나다

    3부 카라바이요의 기적

    10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괜찮아
    SES와 만나다 /여성들의 연대, 무헤레스 우니다스 / 여자라서 더 가혹한 현실 / 실행과 시행착오 / 첫 번째 수익 70만 원

    11장 돌아가야 할 곳
    각자의 새로운 시작 / 한결같은 종욱의 응원 / 죽음이 남긴 질문

    12장 “이 변화는 계속돼야 합니다”
    ‘여보, 도와주세요!’ / 드디어 공방을 짓다

    13장 선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공방 너머의 문제들 / 더 나은 삶을 살 권리 / 기계로는 만들 수 없는 것

    14장 끝까지 남은 사람
    닫힌 문들의 세계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에필로그: 선물 같은 인생

책 속으로

레이코 여사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의 삶이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랐고, 그런 마음으로 공방을 이끌었다. 그렇게 조용하고도 고집스러운 시간이 쌓이면서, 공방은 단순한 작업장을 넘어 가난한 여성들의 삶을 떠받치는 버팀목이 됐다. 젊은 시절 수녀의 꿈을 접고 한국으로 건너와 한센인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을 때도,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_프롤로그: 마침내 도착한 자리 중에서

이 가운데서도 가장 즐겨 부른 노래는 더 시커스의 ‘I’ll Never Find Another You(너를 대신할 사람은 없을 거야)’였다. ‘사람들이 약속의 땅이라 부르는 어딘가에 새로운 세상이 있지/ 언젠간 난 거기에 있을 거야/ 네가 내 손을 잡는다면/ 여전히 거기서도 내 옆엔 네가 필요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깊은 애정과 헌신이 담긴 이 노랫말은 먼 훗날까지 레이코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인생이 이 노랫말과 묘하게 닮아간다는 점이다.
_1장 두 갈래 길 앞에서 중에서

레이코는 이 신부를 따로 만나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신부가 말한 일은 미국의 도시나 단체에 후원을 요청하거나, 기부금을 보내온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영어로 써 보내는 것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레이코에게 이 정도의 봉사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레이코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대주교는 물론이고 자신을 가르친 대학교수들,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 모두가 반대했다. 한센인 마을이라는 점 때문에 내심 불안했지만,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그보다 더 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두렵고 무서웠던 한센병에 대한 공포가 이때만큼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래, 내가 도와야지. 나는 돈을 벌지 않아도 돼.’ 결국 레이코는 성 라자로 마을을 돕기 위해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_2장 한국행 비행기 중에서

한국 미감아를 입양한 한 미국 부모로부터 레이코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다소 황당했
다. “아이가 자꾸 ‘물, 물’ 그러는데 물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언어를 알지 못했던 아이와 양부모 사이에서는 이런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서로 소통도, 적응도 결코 쉽지 않은 그런 곳에 자녀를 보내려는 한센인 부모의 선택을 레이코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4년 전, 아프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 쓰고 찾아온 이 마을에서, 레이코는 점점 갈피를 잃어갔다. 정말 이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인지, 자신이 필요한 곳이 맞는지, 하는 의문이 그녀의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_3장 라자로 마을을 떠나다 중에서

레이코가 남편이 우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종욱은 겨우 숨을 고르고 지난밤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밤에 돌이 될까 말까 한 아이가 응급실에 왔어. 탈수가 심하고 의식도 없었어. 너무 늦게 온 거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다 해봤는데…, 결국 아침에 죽었어. 그런데 충호 생각이 나더라고.”
레이코는 평소 종욱에게서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때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그런데 바로 그날 아침,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그가 근본적으로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더욱 깊이 갖게 됐다._4장 국경 사이의 가족 중에서

그날 오후, 중년 부부가 심각한 표정으로 신문지와 천으로 감싼 꾸러미를 들고 응급실을 찾아왔다. 종욱이 천을 풀어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점 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그것을 끌어안고 얼굴에 비비며 흐느꼈고, 남편은 아들의 사망진단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해변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던 아들이 실종됐다가, 3일 만에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것이 바로 그 살점들이었다. 그 모습에 종욱은 한동안 말문을 잃었다. 그런 일을 겪고 집에 돌아온 뒤 참치회를 보니, 낮에 꾸러미를 부여안고 울던 부부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종욱은 가끔 레이코에게 “의사는 환자의 대변을 보거나 수술로 피를 잔뜩 본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은근히 드러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의사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레이코는 그가 무뎌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_6장 아메리칸사모아: 가족이라는 행복 중에서

레이코는 그런 남편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처지가 점점 미안하게 느껴졌다. 다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그래서 스위스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죠. 그중에는 도움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일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남편이 충분한 수입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유급 봉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정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몰라도 말이에요.”
레이코는 전쟁과 재난으로 인한 난민이나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을 직접 돕고 싶었다. 하루는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활동한 적 있는 지인을 찾아가 조언도 구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종욱에게 그녀는 조심스레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다. “나도 이제는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
_9장 제네바: 따로 또 같이 중에서

현실은 여성들에게 더 가혹했다. 공방 여성들 중에는 남편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거나, 이를 견디다 못해 이혼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시 페루 여성의 가정폭력 피해율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레이코는 어떻게든 이 여성들을 돕고 싶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스위스로 돌아간 레이코는 종욱에게 카라바이요의 열악한 환경과 가난한 여성들의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그리고 도움을 청했다. 레이코에게 종욱은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반자였다.
“제가 남편에게 ‘여자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못하는 거다. 내가 이런 재료로, 이런 규모로, 이런 물건을 잘 만들면 사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하니까 좋아했어요. 물건을 가져가지 않아서 남편에게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혹시 재료비라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흔쾌히 ‘앞으로 필요한 재료비는 내가 다 부담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기분 좋았죠.”
_10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괜찮아 중에서

평생 자신을 지켜주겠다던 남편을 떠나보낸 뒤, 레이코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남편이 남긴 재산은 12년 된 볼보 승용차 한 대뿐이었다. 집 한 채 없었다. 니옹의 아파트도 월세였다. 다행히 WHO에서 나오는 유족연금과 남편의 사망 보험금 덕분에 당장 생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남은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스위스에서 홀로 늙어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이나 본으로 돌아가는 것도 마뜩지 않았다. 결국 레이코는 자신을 기다리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리마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카라바이요 공방에서는 가난한 여성들이 일본 대학 축제와 제네바 바자회에 보낼 알파카 제품을 만들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_11장 돌아가야 할 곳 중에서

다행히 여성들이 공방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물을 구해 자주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찌든 삶의 냄새도 사라져갔다. 새 옷과 새 신발을 신는 아이들이 늘었고, 아이들의 영양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여성들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자신을 다시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이 이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조금씩 달라진 여성들은 이제 넓고 쾌적한 독립 공간에서 일본의 두 대학과 WHO 바자회에 보낼 제품을 만드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레이코는 무엇보다 매달 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레이코는 자신이 떠난 뒤에도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생긴 것에 안도했다._12장 “이 변화는 계속돼야 합니다” 중에서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레이코는 개인을 구하는 것이 결국 사회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동정심이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였다. 그날 밤 레이코는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 뒤, 공방을 알리기 위해 운영하던 SNS에 글을 올렸다.
“제가 하는 활동이 비실용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방 여성 15명을 돕는 일이 2천 명의 지역사회를 돕는 일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발전이 모이면 사회가 발전합니다. 많은 가난한 개인이 사회를 이루고 있고, 그들 각자에게는 더 나은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_13장 선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중에서

“레이코의 활동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공방 여성들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줬고, 이를 통해 그들의 가족과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어요. 또 여성들이 자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왔고, 빈곤의 고리를 끊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레이코는 자신의 삶을 공방 활동에 완전히 헌신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죠. 레이코는 많은 시간을 스트레스와 걱정 속에서 보냈는데, 물건의 품질부터 공방 운영의 세부 사항까지 끝까지 신경 쓰려는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레이코는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오스카)_14장 끝까지 남은 사람 중에서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왜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페루에 남아 사느냐고. 한때는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도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이 돼 일본으로 돌아가면 가족들도 힘들 거예요. 다들 각자 힘겹게 살아가는데,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세를 질 수는 없죠. 더구나 산다는 게 그냥 먹고 자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페루에는 아직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요. 공방에서 뜨개질을 가르칠 수도 있고, 공부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 학비도 도와줄 수 있고요. 그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갖고, 자기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아마 그때까지는 못 떠날 것 같아요. 공방 여성들도 각자 가족이 있으니, 제가 죽었다고 해서 당장 못 살 사람들은 아니에요. 이제는 남은 생을 보낼 곳이 페루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제 레이코에게 남은 가장 큰 숙제는 공방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남겨두는 일이다. 언제나 가까이서 레이코를 도와온 오스카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만약 레이코가 건강 문제든 다른 이유든 공방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지금의 공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_에필로그: 선물 같은 인생 중에서

출판사 서평

한 사람의 선의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부인, 가부라기 레이코
한국의 한센인 마을에서 페루의 빈민가 카라바이요까지
그녀가 평생 믿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일의 가치’였다

그녀는 왜 낯선 나라의 한센인 마을로 향했을까
《마더 레이코 이야기》는 전쟁 직후 일본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삶에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고, 가난한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레이코는 대학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삶의 방향을 깊이 고민한다.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던 문학도였던 그는 한때 수녀가 되기를 꿈꾸었고, 안정된 길 대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나선다.
그 선택이 그녀를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의 한센인 공동체, 성 라자로 마을로 이끌었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극심했다. 많은 이들이 외면하던 곳으로 레이코는 스스로 걸어 들어갔지만, 이 책은 그 선택을 숭고한 희생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녀 역시 두려워했고, 흔들렸고, 자신이 정말 이곳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물었다.
그 성 라자로 마을에서 레이코는 의대생 이종욱을 만난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평생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인연의 시작이었다.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에서 자란 두 사람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 안에서 가까워진다.

사랑은 국경을 넘고, 삶은 세계를 향한다
성 라자로 마을에서 시작된 인연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레이코의 삶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된다. 하와이, 아메리칸사모아, 피지, 마닐라, 제네바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국제보건 현장을 따라 이동하며 낯선 삶을 새로 꾸려간다.
그러나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국제기구나 해외근무 같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다. 이 시간 동안 레이코는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때로는 가족이 떨어져 지내야 했던 고단한 시간을 견뎠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이종욱이 점점 더 큰 책임을 맡아가는 동안, 레이코는 가족을 지키고 스스로의 삶을 버티며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돌보았다.
이종욱과 레이코 두 사람은 영웅과 조력자의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지탱한 동반자였다. 이종욱이 세계 보건의 현장에서 길을 넓혀가는 동안, 레이코 역시 남편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고 자기 삶의 질문을 계속 품는다. 훗날 카라바이요로 향하게 되는 선택은 갑작스러운 결심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가장 오래된 희망
이종욱 사무총장 서거 이후, 레이코는 다시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한국이나 일본으로 돌아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향한 곳은 그녀 스스로 공방 일을 벌였던 페루 리마 북쪽의 빈민 지역 카라바이요였다.
카라바이요는 가난과 질병, 폭력과 차별이 일상처럼 존재하는 곳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얻기 어려웠고,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조차 갖기 힘든 현실이었다. 레이코는 거창한 사업을 앞세우지 않았다. 여성들과 함께 앉아 뜨개질을 하고, 제품을 만들고, 판매할 길을 찾으며 아주 작은 변화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워진 공방은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었다. 여성들이 자신의 손으로 수입을 얻고, 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하고, 삶의 존엄을 회복하는 공간이었다. ‘무헤레스 우니다스’, 곧 ‘여성 연대’라는 이름처럼 공방은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버티는 공동체로 자라났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시행착오와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고, 남편의 죽음 이후 감당해야 했던 상실도 컸다. 그럼에도 레이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삶이 오늘보다 조금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그녀는 카라바이요에 남아 공방을 지켜냈다.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일
세월은 레이코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며 건강이 약해졌고,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이별도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공방의 판로를 끊어놓았고, 20년 넘게 이어온 활동은 존폐의 위기 앞에 섰다.
그럼에도 레이코는 마지막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방을 살릴 길을 찾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뜨개질 공방이나 몇몇 지원 사업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 곁에 머무는 일이 어떻게 한 공동체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마더 레이코 이야기》는 레이코를 성녀나 영웅으로 박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흔들리면서도 끝내 자신이 믿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삶을 따라간다. 한국의 한센인 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은 남태평양과 유럽을 지나 페루 카라바이요에 닿았고, 그곳에서 다시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었다.
레이코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다만 눈앞의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 그 조용한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되었다.

《마더 레이코 이야기》는 묻는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구의 곁에 끝까지 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본정보

상품정보
ISBN 9791157065776
쪽수 준비중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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