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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과학의 달 《번역! 과학책의 세계》

이벤트 기간: 2025-04-01 ~ 2025-04-30

2025 과학의 달, 번역! 과학책의 세계

2025 과학의 달, 번역! 과학책의 세계

과학MD가 전하는 말: 과학 분야에는 뛰어난 국내 저자들의 책도 많지만, 해외에서 번역된 책 역시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와 책이 쏟아지기 때문일까요? 과학의 달을 맞아 전 세계의 원고와 한국의 독자들을 이어주는 번역가를 만나보았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고 나면, 과학책을 고를 때 ‘번역가’의 이름이 새롭게 보일 거예요! 독자 여러분의 독서 세계를 한 단계 넓혀줄 과학책 번역가 세 분을 소개합니다. 😉

박병철 번역가 | 출판계가 믿고 맡기는 번역가 박병철.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약 30년 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번역과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번역 부문에서 2005년에 한국출판문화상을, 2016년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번역일

번역가 박병철에게 번역이란?: 번역이란... 곰처럼 재주를 넘는 일입니다. 재주는 곰(번역자)이 넘고, 박수는 조련사(저자)가 받지요. 물론 책의 품질 대부분은 저자가 좌우하지만, 번역은 콘텐츠를 정교하게 가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최종 단계의 user interface이기 때문에, 집필에 버금가는 창작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컴퓨터도 번역을 꽤 잘하지만, 사람이 한 번역과 구별 불가능해지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부디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 번역을 업으로 삼은 번역가의 하루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요?: 이건 번역하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겁니다. 굳이 번역가라고 해서 유별난 삶을 사는 건 아니니까요. 저의 경우는... 기상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들쭉날쭉이고, 집에 당구대가 있어서 틈날 때마다 당구를 칩니다(제법 고수임). 번역하다 스트레스받으면 기타를 퉁기면서 풀고, 하루 작업량이 끝나면 프라모델을 만들거나 저만의 예술 작품(?)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혼자 사는 프리랜서이니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원고 마감일을 지키려면 취미활동은 반드시 하루 작업량을 끝낸 후에 해야 합니다. 이것은 프로야구 시즌 초반에 첫 끗발이 좋아서 타율 1위에 오른 타자가 시즌 내내 수위타자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하루이틀 한눈을 팔았다간 금세 작업량이 두세 배로 늘어나니까요. | 과학책 번역의 기쁨이 있다면 어떤 순간인가요? 번역가님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순간을 듣고싶어요.: 번역을 하다가 흠... 다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오겠군.”하고 짐작했는데 그 짐작이 정확하게 들어맞았을 때, 행복이라기보다 일종의 “통쾌감”이 밀려옵니다. 소설을 번역하다가 이런 경우가 생기면 그 소설은 볼 장 다 본 거지만, 과학책은 짐작 가능할수록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 챕터의 주제까지 제 예상과 일치하면 통쾌감이 더욱 배가되지요. 이는 곧 저자의 논리회로가 저와 비슷하다는 뜻이고, “내가 책을 썼어도 이렇게 썼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저자와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책을 만나면 마치 내가 직접 쓰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순풍에 돛 단 듯 일사천리로 진도를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제일 행복한 순간은 원고료가 입금되었을 때... (속물 같지만 팩트입니다.)

대표도서

박병철 번역가의 나를 대표하는 과학책과 문장 | 뉴욕 8번가 지하철역에 누군가가 휘갈긴 낙서 한 토막: xn + yn = zn. 이 방정식에는 정수해가 없다. 나는 경이로운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탈 기차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여기 적을 만한 시간이 없다! | 꼭 한 권만 골라야 한다면 수학교양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사이먼 싱 著)를 꼽고 싶습니다. 이 책은 1998년에 출간되었는데, 제가 먼저 번역을 하겠다고 출판사에 건의했다가 수학책은 안 팔린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책이 안 팔리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다며 박박 우겨서 기어이 동의를 받아냈고, 평소 수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정성껏 번역했습니다. 책이 출간될 즈음에 IMF 사태가 발발하여 원고료를 받는 데 2년 넘게 걸린 것 빼고는 결과도 꽤 괜찮았지요. 현재 40대 과학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인력을 양성하는 데 눈곱만큼이나마 기여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시 볼 때마다 보람을 느끼는 책입니다.

번역이 가장 힘들었던 혹은 도전적이었던 책이 있으신가요?

단연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였습니다. 일단 책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최상급이었고, 논리 전개 방식과 수학기호 등이 300년도 더 된 옛날식이어서, 거의 암호를 해독하는 마음 자세로 임했습니다. 게다가 뉴턴은 자신의 책이 어설픈 학자들이 어설픈 논평 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증명의 중간 과정을 사정없이 생략해 가며 아주 난해하게 써놓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의 증명을 이해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지요. 독자 여러분, 뉴턴이 천재라는 말에 속지 마세요. 그는 천재가 아니라 괴물입니다!

최근 읽은 책 중 좋았던 책이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팀 파머 著 / 디플롯 / 2024), 확률적 일기예보의 근간인 “앙상블 예측 시스템(ensemble forecast system)”을 개발한 저자가 직접 집필한 혼돈계(chaos system)의 입문서. 특이한 것은 저자가 기상학자가 아니라, 일반상대성이론과 블랙홀을 연구하던 물리학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혼돈계의 기본 원리를 깔끔하게 설명한 후 이론물리학으로 되돌아와서, “결정론을 몰아낸 주범으로 간주되어온 양자역학”을 다시 결정론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의식(意識), 그리고 신(神)이라는 개념에 혼돈의 기하학을 적용하여 재조명하다가, 결국은 사후세계까지 도달합니다. 그동안 혼돈계를 소개한 책은 꽤 많이 있었지만, 이토록 방대한 영역에 혼돈이론을 접목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블랙홀 (브라이언 콕스 著 / RH 코리아 / 2025 출간 예정) |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 전도사이자 꽃중년의 대표주자인 브라이언 콕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블랙홀 안내서입니다. 기존의 블랙홀 관련 서적이 독자를 우주선에 태우고 블랙홀 주변을 둘러보며 “저 안에는 이러이러한 것이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는 관광 패키지였다면, 이 책은 독자를 데리고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 희한한 세계를 직접 보여주는 트래킹 패키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명은 블랙홀의 수학적 구조를 한눈에 보여주는 펜로즈 다이어그램을 통해 진행되며,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을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푸는 재미도 맛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관련 분야를 전공해야 접할 수 있는 내용인데, 이 난해한 내용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공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겁니다. 블랙홀의 특성을 자연어가 아닌 수학적 언어를 통해 이해하고 싶다면, 꼭 한 번 일거볼 것을 권합니다.

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著 / 문학수첩 / 출간 예정) | 아미도 양자역학 안내서 중 가장 유쾌하고 통쾌한(?) 책일 겁니다. 이 책의 주제는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가 아니라, “양자역학을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100년 전에 닐스 보어를 필두로 한 코펜하겐 학파의 학자들이 “양자계를 관측하면 파동함수가 붕괴되어.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만 남는다”고 못을 박은 후로, 파동함수 붕괴이론은 마치 양자역학의 정설처럼 굳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니까... 입증할 수 없지만, 반증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코펜하겐 학파에 대항해온 다른 해석들(루주의식이론, 그냥붕괴이론, 다중우주가설, 유도파동설 등)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닐스 보어의 권위에 통쾌한 펀치를 연타로 날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대안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의 도덕적 가치와 법률체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배꼽 잡는 유머와 함께 조목조목 짚어놓았습니다. 물론 해석 방법이 달라진다고 해서 양자역학의 수학체계가 바뀌진 않겠지만, 이론의 철학적 배경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좋아하는 작가 혹은 번역가가 있다면요?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최고의 과학자이자 최고의 재담가. 사소한 현상 속에서 가장 심오한 물리법칙을 이끌어내는 깊은 통찰력의 소유자. 절대 남이 하는 방식대로 설명하지 않고 자신만의 논리를 펼치며 이상한 길로 가다가, 결국은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개성 만점의 물리학자. 이 정도 스펙이면 생전 화려했던 여성 편력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 미치오 카쿠(Michio Kaku) 70대의 나이에 청년 못지않은 열정으로 과학을 전도하는 일본계 미국인 물리학자. 현재의 과학 수준에 인간의 본성을 결합하여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하는 탁월한 미래학자. 파격적이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고, 방대한 분야를 논하지만 설명이 간결하고 명쾌함. 미디어 출연에 목매어 연구에 소홀한 여타 비디오 프로페서들과는 수준이 다름.

리처드 파인만 인물 정보 바로가기 미치오 카쿠 인물 정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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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번역가: 어려운 책은 쉽게, 쉬운 책은 재미있게 옮기려는 과학책 번역가.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 대학원과 미국 조지아대학교 식물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번역일

번역가 조은영에게 번역이란?: 과학책 번역에 한정하여 말씀드리면, 영한 번역가인 제가 하는 일은 결국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서양의 과학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한 권에 담긴 서양 과학의 정보와 지식을 한국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지요. 정보와 지식의 전달이 가장 큰 목적이다 보니 역자는 그 정보를 저자가 의도한 대로 정확히 전달하는 일에 가장 집중해야 합니다. 이에 더하여 저자가 제공하는 정보 자체의 정확성까지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라도) 점검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라도 제가 주로 작업하는 대중 과학서는 학술논문이나 기술서, 전공 교과서와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저자라는 인문적/인간적 요소입니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을 쓰면서 그 안에 객관적 정보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넣습니다. 독자에게 전할 정보를 주관적으로 선별하고, 정보를 전달할 방식을 결정하며, 무엇보다 정보와 함께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책 번역은 한 분야의 전공자가 쓴 전문적인 지식을 정확히 옮겨야 할 뿐 아니라, 문체나 어휘, 책의 형식이나 내용 등을 통해 드러나는 저자의 개성까지 잘 살려야 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지요. | 그럼 번역을 업으로 삼은 번역가의 하루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요?: 루틴이 없는 게 루틴이랄까요. 제 경우는 정해진 시간표를 지키는 일에 집중력이 많이 소모되더라고요. 번역은 오랜 시간 몰입해야 하는 작업이라 그 일에 쓸 에너지를 아끼고 싶고, 또 마감의 부담을 안고 사는 자신을 더 압박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고정된 일정을 만들지 않고 있어요. 평생 새벽형 인간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생체 리듬이 바뀌어서 현재는 오전 8시쯤 시작해서 밤 1시 정도까지, 집안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원고를 붙잡고 있어요. 참, 유일한 루틴이 낮잠인데요, 거의 매일 낮잠을 잡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작업 중인 워드 화면이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로 채워지면 그대로 침대로 직행합니다(안방에 책상을 두고 작업하기 때문에 뒤를 돌면 바로 침대예요). 졸리면 애쓰지 않고 그냥 자고 일어나요. 잠을 자야 충전이 되더라고요. 운동은 5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는데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하려고요. | 과학책 번역의 기쁨이 있다면 어떤 순간인가요? 번역가님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순간을 듣고싶어요.1. 지적 쾌감을 느낄 때요. 평소 책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 아니었는데 번역을 시작한 후로 출간하기까지 같은 원고를 열 번 이상 읽으면서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이해할 때 오는 즐거움이 엄청나더라고요. 2. 출간 직전, 마지막 역자 교정을 진행하면서 거의 완성된 원고를 읽을 때 눈에 걸리는 게 없이 책장이 넘어가면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3. 책이 술술 읽힌다는 독자평이 있으면 거기에 내 지분도 40퍼센트는 되지 않을까?라면서 남몰래 흐뭇해합니다. 또 유난히 공들여 지은 문장을 독자가 책의 인상적인 구절로 인용하면 보는 눈이 있는 독자시군이라면서 혼자 손뼉을 쳐요. 4. 기획이나 내용이 신선한 책을 의뢰받으면 너무 신이 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유형의 과학책이 나온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대표도서

오해의 동물원의 저자 루시 쿡의 후속작으로, 오해의 동물원에서는 인간에게 오해를 받아온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 자연과 자연 현상에 대한 인간의 어긋난 해석이 근대를 거쳐 바로 잡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암컷들은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과학에서 소외되었던 암컷이라는 존재의 진실을 파헤쳐 과학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앞으로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모색합니다. 이 책은 제 번역서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재밌게, 또 충격적으로) 읽었고, 또 이 책으로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본심에도 올랐기 때문에 저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서술 방식이나 시원시원하고 신랄하면서도 유머 있는 문체가 저와는 궁합이 아주 잘 맞았어요. 제 장점을 발휘하게 해준 책이라 대표작으로 소개했습니다.

번역이 가장 힘들었던 혹은 도전적이었던 책이 있으신가요?

언더랜드(로버트 맥팔레인, 소소의책) | 언더랜드는 땅 밑 세계의 심원한 시간과 공간을 탐험하는 여행기입니다. 아찔한 지하 탐험이 역사와 과학, 신화와 문학적 요소들과 맞물려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놀라운 작품이에요. 파리의 카타콤, 노르웨이의 석유층, 불비의 암흑물질 연구소, 그린란드 물랭, 트레비치아노 심연, 온칼로 핵폐기물 저장조, 로포텐 동굴 등 다양한 언더랜드에서의 모험이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감히 쉽게 꿈꿀 수 없는 세계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이 책은 제 경력에서 비교적 초반부에 맡았던 책인데, 과학책으로 분류가 되기는 했지만 언더랜드로 상징되는 다양한 지하 세계에 대한 시적 묘사, 탐험 과정의 사실적 설명, 배경이 되는 역사 및 과학, 저자의 깊은 인문학적 사유가 골고루 균형을 이룬 대작이라 저에게는 대단히 큰 도전이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크게 성장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합니다.

최근 읽은 책 중 좋았던 책이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거북의 시간, (사이 몽고메리, 돌고래) | 전 세계 오지를 탐사하며 자연과 교감한 내용으로 30여 권의 책을 쓴 과학 저널리스트 사이 몽고메리의 신작입니다. 이 책은 세계적인 야생동물 전문가인 저자가 미국 동부 어느 주택가에 자리 잡은 거북구조연맹 인턴으로 활동하며 일어난 에피소드들을 전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거북들은 물론이고 거북을 사랑하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픽션보다 강렬한 몰입감을 줍니다. 젊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저자는 노년에 들어와 새롭게 추구하게 된 지혜의 길잡이로 거북을 선택합니다. 저자가 거북을 통해 시간과 인생에 대해 사색한 이야기는 이 책의 또 다른 축을 이루며 읽는 이에게 위로와 치유를 선사합니다. 저는 제 삶에서 한참 지쳐 있을 때 이 책을 작업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과 함께 웃고 우는 가운데 큰 감동과 힘을 얻었어요. 제가 작업했던 과학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

지우지 마시오 (제시카 윈, 단추) |소재와 기획력이 뛰어난 진귀한 책입니다. 화이트보드와 슬라이드 화면이 소통의 방식을 평정한 학계에서 유일하게 칠판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분야가 수학입니다. 이 책은 현역 수학자 109명의 칠판 사진과 그들이 칠판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수학자들은 칠판 한가득 사고의 흐름을 그리거나 쓰고, 미처 그 자리에서 생각을 마무리 짓지 못할 때 지우지 마시오(Do Not Erase)라는 팻말을 두고 떠납니다. 수학자에게 수학이란?, 수학자에게 칠판이란? 이 두 질문에 대해 진짜 수학자들이 내놓은 해(解)를 읽다 보면, 그들의 칠판과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어느새 그들의 세계를 사랑하게 될 겁니다. 어쩌면 수학자의 칠판보다 그들이 솔직담백하게 적은 짧은 글들이 더 매력적이었던, 아주 독특한 즐거움을 준 책이었습니다.

과학의 눈, (잭 챌로너 지음, 변정현 옮김, 초사흘달)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미소 세계의 이미지, 최첨단 시뮬레이션 기술로 시각화한 자연 현상, 예술과 상상력으로 구현된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화려한 과학 사진집입니다. 평소 텍스트 위주의 긴 문장을 주로 작업하다 보니 쉴 때는 활자보다는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책을 집어 들게 됩니다. 가끔 텍스트만으로 저자의 묘사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이미지를 갈구하는 마음이 더 커집니다. 이 책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과학의 전 분야를 대표하는 이미지들이 실려 있고 간단한 설명으로 이해를 더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 혹은 번역가가 있다면요?

과학책을 즐겨 읽으시는 고마운 독자분 여러분! 바야흐로 과학책 전성시대입니다. 전문 지식은 물론이고 작가적 역량까지 뛰어난 많은 저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의 참맛을 알게 해주는 양질의 책들을 출간하고 있어요. 게다가 최근 십여 년, 훌륭한 여성 과학자와 과학 저널리스트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과학 출판계가 훨씬 풍성해졌지요. 최근에는 국내 저자가 쓴 대중 과학서도 크게 늘어났고요. 어린이 과학책의 수준도 굉장히 높습니다(솔직히 설명은 훨씬 쉽고 친절해요). 저자가 수년간 넓고 깊게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써낸 한 권의 책에는 짧은 영상이나 AI의 즉각적인 답변에는 담기지 않는 사고의 흐름과 강력한 전달의 힘이 있습니다. 또한 클릭 한 번으로 얻지 못할 정보가 없는 이 시대에 과학책은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만이 아니라, 저자가 정보를 선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성하고 창조한 한 편의 예술 작품이 되었습니다. 전 단순한 지식 창고가 아닌 한 편의 지적 예술을 우리말로 옮긴다는 생각으로 작업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즐겁게 감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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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노승영: 우리말의 서정을 옮기는 번역가 노승영.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한다. 《세계숲》, 《향모를 땋으며》 등을 옮겼다. 2024년 제6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했다.

번역일

번역가 노승영에게 번역이란?: 영어 번역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번역이란 독자들이 원서를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으면 다들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니까 영어책도 웬만큼 읽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갈 수 있으니 번역가가 대신 고생하여 독자의 삶을 여유롭게 해주는 것이죠. | 그럼 번역을 업으로 삼은 번역가의 하루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요?: 저는 작업실이 따로 있어서 매일 출퇴근하고 있어요. 아침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맨 먼저 고양이 밥을 주고 청소기를 돌리고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십니다. 그러고는 저녁 6시까지 작업합니다. 하루 목표는 200자 원고지 45매인데, 15매 번역할 때마다 딴짓을 하면서 휴식을 취합니다. | 과학책 번역의 기쁨이 있다면 어떤 순간인가요? 번역가님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순간을 듣고싶어요. : 문장의 아귀가 딱 맞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저는 번역이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과학책은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1000피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춰본 사람이라면 번역가의 심정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겠죠.

대표도서

에드거 앨런 포, 『유레카』(읻다, 2022) 『유레카』는 읽어본 사람이 거의 없는 책일 것 같아요. 에드거 앨런 포의 애독자라도 이 책이 있는 줄도 모르지 않을까 싶어요. 포는 당대의 빈약한 과학 지식을 가지고 우주의 탄생과 소멸에 대한 통찰을 펼쳐내는데, 뜻밖에도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에요. | 나는 나의 연구 결과가 지금 읽히든 후세에게 읽히든 개의치 않는다. 하느님께서 한 명의 관찰자가 나타나길 6,000년 동안 기다리셨듯, 나도 독자들이 나타나갈 백 년 동안 기다릴 수 있다. 나는 승리자다. 나는 이집트인의 황금 비밀을 훔쳤다. 나는 거룩한 흥분을 만끽할 것이다.

번역이 가장 힘들었던 혹은 도전적이었던 책이 있으신가요?

대니얼 데닛,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동아시아, 2015). 대니얼 데닛은 철학과 과학을 종횡무진하며 독창적 사유를 펼친 학자예요. 방대하면서도 심오한 그의 족적을 따라가느라 무척 애먹은 기억이 나요.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을 느낄 수도 있었어요.

최근 읽은 책 중 좋았던 책이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제이슨 윌크스, 『수학하지 않는 수학』(시공사, 2020). 기초 개념만 가지고 수학의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는 책이에요. 그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갈 수는 없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한 공식들이 단순한 조각들로 분해되는 장면을 구경하는 쾌감이 있어요.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갈라파고스, 2023). 제가 번역한 『세계숲』(아를, 2025)의 저자가 쓴 책이에요. 벤 롤런스, 『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엘리, 2023)를 번역하다가 베리스퍼드-크로거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고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마침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가 한국에 출간돼서 바로 읽어봤어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말 그대로 ‘마을 하나가 키운 아이’가 되어 아일랜드의 전통 지식을 계승하는 과정이 감동적이에요.

로버트 새폴스키, 『행동』(문학동네, 2023). 과학책인데, 뜻밖에도 다 읽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책이에요. 저자가 탄탄한 과학적 증거와 논증을 거쳐 도달하는 결론은 착한 행동이란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습관의 결과라는 거예요. 일단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좋아하는 작가 혹은 번역가가 있다면요?

강주헌 선생님은 제가 닮고 싶은 번역가예요. 엄청난 속도로 작업하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으시거든요. 분야를 가리지 않는 것도 맘에 들어요. 강주헌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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