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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먹는 한 끼에서 세상을 새롭게 보다 『먹기들』

10여 년의 현장 연구로 펼쳐 보이는 몸과 돌봄, 다른 생명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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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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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인간은 오랫동안 인간의 표상이었다. 로댕의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신체 건장한 남성이 턱을 괴고 앉아 생각하고 있다. 로댕은 이 사람이 머리로만이 아니라 온몸의 근육으로, 잔뜩 힘을 준 손가락과 오므린 발가락으로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생각이 몸의 일이 된 셈이지만, 그 몸은 의지로 잘 단련된 남성의 몸이다. 그런데 근육은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먹고 저 자리에 앉았을까. 그 음식은 누가 마련했을까. 조각은 그가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해준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서양 철학이 인간을 설명해 온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에서 인간다움을 찾았고, 추상적 사고를 몸으로 끌어내린 20세기 철학에서도 그 몸은 걷고 보고 움직이는 몸이었다. 먹는 일은 살아 있기 위한 조건일 뿐, 인간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행위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인류학자이자 철학자 아네마리 몰은 이 오래된 위계를 뒤흔든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이론에 새겨진 인간은 “다른 생명체 위에 군림하고 세계의 나머지 부분과 맺는 신체적 관계보다 그의 생각을 우위에 두는 인간”이다. 그는 이러한 인간을 보편적 주체로 내세워서는 인간이 지구의 생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오늘의 현실을 다루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언어와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먹기에서 출발해 인간예외주의를 뒤흔들기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전에 먹는 존재다 『먹기들』에서 저자가 사유의 모델로 삼은 것은 ‘먹는 인간’이라는 또 하나의 보편적 주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먹기의 장면들이다. 네덜란드의 재활 클리닉, 요양원, 실험실, 상점, 식당, 체중 감량 워크숍, 식품 학회, 하수처리장 등 여러 장소에서 관찰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먹는 방식과 먹기 실천, 먹기를 둘러싼 갖가지 활동을 연구의 재료로 삼았다. 안정적인 임금을 받고, 집 근처에 식재료가 잘 갖춰진 상점이 있고, 나름의 취향을 지닌 특수한 조건들로 이루어진 ‘먹는 나’, 저자 자신의 먹기에 대해서도 쓴다. 먹기란 먹는 존재와 그를 둘러싼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장면들은 먹기에 관한 하나의 이론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저자는 대안 이론을 세우거나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먹기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활동임에도 폄하되어 온 노동, 먹는 존재와 먹히는 존재를 잇는 고리를 여러 상황과 맥락에서 살피면서 ‘존재하기being, 알기knowing, 하기doing, 관계 맺기relating’라는 개념을 새롭게 상상한다. 요컨대 『먹기들』은 먹기에 대한 책이 아니라, 먹기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먹기에서 출발하면 존재, 앎, 행위,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존재하기being. 저자는 메를로퐁티, 팀 잉골드, 존 와일리가 주체로 내세운 ‘나’, 걸어 다니는 사람의 자리에 먹는 사람을 놓는다. 걷는 몸은 어디를 가든 주변 환경과 구분된 채 자기 자신을 유지하지만 먹는 몸은 주변 환경과 뒤섞인다. 바깥에 있던 것이 입으로 들어와 목구멍을 지나 내 몸이 되고, 내 몸에 있던 것은 다시 빠져나가 하수처리장을 거쳐 바다로 흩어진다. 먹는 나는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물질을 주고받”으면서 계속 변화한다. 알기knowing. 대상과 거리를 두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오랜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음식을 먹을 때 앎의 대상은 먹는 이에게 흡수되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맛을 아는 일은 사실을 확인하는 일인 동시에 좋고 싫음을 가리는 일이고, 그러는 동안 음식도 입맛도 달라진다. 저자는 이런 앎을 객관적이지도 주관적이지도 않은 ‘변형적’ 앎이라 부른다. 하기doing. 행위란 의지로 제 몸을 통제하는 일이라는 익숙한 공식을 뒤흔든다. 예컨대 식욕을 잃어 먹지 않는 사람에게 먹기는 자연적 과정도 선택의 문제도 아닌 해내야 하는 과업이다. 삼켰다 하더라도 소화는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소화의 일부는 냄비 아래의 불과 반죽 속의 미생물, 소화하기 쉬운 곡물을 여러 세대에 걸쳐 심어온 농부들이 이미 해둔 일이다. 이때 먹기란 통제가 아니라 돌봄, 곧 “협상하고, 수선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일”이다. 관계 맺기relating. 레비나스에게 윤리적 관계란 낯선 이의 얼굴에서 나와 같은 인간을 알아보고 내 음식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 윤리는 인간들 사이의 윤리다. 저자는 관계의 범위를 내가 먹는 존재로까지 넓힌다. 이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먹는다. “나의 사랑은 일종의 폭력이다.” 그렇다고 먹기가 파괴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과 한 알은 먹히면 사라지지만, 그 품종은 먹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널리 재배된다. 기르는 일과 삼키는 일은 얽혀 있다. 여기서 질문은 어떻게 평등해질 것인가에서 어떻게 차이를 지우지 않을 것인가로 바뀐다. 가로지르며 뒤얽히는 먹기‘들’ 이 책에서는 두 개의 텍스트가 나란히 진행된다. 본문에서 저자는 철학, 인류학, 과학 등 다양한 분과의 텍스트를 읽다가 자신의 연구 현장이나 누군가와 식사하는 자리로 건너가기를 되풀이한다. 메를로퐁티를 읽다가 네덜란드의 재활 클리닉에서 삼키는 연습을 하는 환자 곁으로, 레비나스와 해러웨이를 읽다가 친구의 텃밭으로 가는 식이다. 본문을 따라가다 보면 왼쪽 면에 불쑥, 큰길에서 갈라져 나간 샛길처럼 ‘곁글’(sidelines)이 나타나 몇 쪽에 걸쳐 이어진다. 메릴린 스트래선,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등 다른 연구자들의 작업에서 가져온 먹기 이야기다. 곁글은 저자의 “현장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는 동시에 그 현장 너머에서 먹기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며, 저자가 연구한 현장도 여럿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일깨운다. 큰길과 샛길을 오가며 책을 읽다 보면 단순하고 당연한 일이라 여긴 ‘먹기’가 낯설어진다. 사람과 사람, 인간과 비인간 사이, 몸의 안팎에서 벌어지는 먹기‘들’이 보인다. “우리는 일관성이라는 완고한 꿈을 버리고, 패치워크와 다성 음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저마다의 먹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아네마리 몰

Annemarie Mol
과학·기술·사회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통찰력을 펼쳐 온 인류학자이자 철학자, 과학기술학자.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의학과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류학적 연구 방법론을 기반으로 서구 철학의 주요 개념에 개입하는 작업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의료사회학과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왔다. 2012년 네덜란드 최고 학술상인 스피노자상을 수상했고, 2024년 과학사회학회에서 수여하는 버널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돌봄의 논리』, 『바디 멀티플』 등이 있다.

번역 이지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과학기술과 의료, 젠더와 인간됨이 만나는 지점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은 산만하게, 또 느리게 읽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쓰며 살고 있다. 『돌봄의 얼굴』,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를 썼다.

번역 임소연

과학기술학자. 동아대학교 융합대학 교수. 인간향상기술과 몸, 신유물론 페미니즘, 기술과 정동, 인공지능 윤리 등을 연구한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겸손한 목격자들』(공저) 등을 썼고, 『바디 멀티플』(공역)을 옮겼다.

목차

  • 1장 경험철학
    인간의 조건 | 사실과 규범 | 땅에 발붙인 철학 | 경험적 다중성 | 먹기
    곁글: 용어와 혁명

    2장 존재하기
    신경근육적인, 대사적인 | 내부와 외부의 경계 | 변화하기, 그대로 있기
    | 내가 온 곳, 내가 가는 곳 | 나를 통과하는 세계
    곁글 1: 흰-사람과 가벼운 음식
    곁글 2: 식민지의 몸들

    3장 알기
    지각적 감각작용 | 가치 매김하는 관여 | 주체 바꾸기 | 서로 엮인 삶과 겪음
    곁글 1: 미각 용어
    곁글 2: 효능과 미학

    4장 하기
    먹기라는 과업 | 분산된 하기 | 살기와 죽기의 방식들 | 하기가 되는 것
    곁글 1: 상황 안에서의 몸들
    곁글 2: 간섭

    5장 관계 맺기
    주기와 취하기 | 폭력과 사랑 | 반려 혹은 연루된 | 먹기와 먹이기
    곁글 1: 먹이는 관계들
    곁글 2: 차이를 통해 관계 맺기
    곁글 3: 사유하기와 먹기

    6장 지적 재료들
    노동의 정치 | 실천의 정신 | 사유하기의 재검토
    곁글: 타자성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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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출판사 서평

“오늘날의 위기에 이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글은 없어 보인다.”
- 아서 W. 프랭크, 《Journal of Medical Humanities》 『먹기들』 서평 중

기본정보

상품정보
ISBN 9791122224306
쪽수 준비중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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